1944년 ‘아틀리에’극장에서 초연된 『안티고네』(1942년 집필)는 소포클레스의 원작을 현대 감각에 맞게 개작한 작품으로서 아누이의 작품 중 가장 널리 사랑받는 작품이다. 독일 점령하에 초연된 이 작품은 관객들이 주인공 안티고네에게서 나찌에 항거하는 레지스탕스의 이미지를 발견함으로써 큰 공감대를 형성하여 500회 상연이라는 당대의 경이로운 기록을 세웠다. 이 연극은 독특한 연출로 특히 시선을 끌었는데, 구체적인 시?공간적 특성을 드러내지 않은 채 비극적인 극 분위기를 더욱 강조하는 역할을 하였다.
아누이의 극은 무 특성의 무대장치와 의상으로 인하여 그리스 적인 분위기를 창출하지 않는다. 또한 작가는 고전극에 등장하는 예언자 ‘티레지아스’대신 유모와 2명의 근위병을 첨가하였다. 그리스 작가 소포클레스의 극이 신의 법령과 인간의 법령과의 대결에서 인간의 오만함이 처단받는 장엄한 성격을 띠고 있다면, 아누이는 삶 앞에서 인간이 취하는 대립된 두 가지의 태도를 보여준다. 현실을 인정하고 자신의 꿈과 이상을 포기하면서 작은 행복을 받아들이는 크레온과 절대적인 사랑과 순수성, 완벽한 자유를 꿈꾸지만, 삶속에서는 이러한 것들을 실현할 수 없기에 삶조차도 가차없이 포기하려는 안티고네의 대립이 바로 그것이다. 소포클레스의 크레온이 독재자 페리클레스를 본 떠 만든 만큼 냉혹하고 비정한 국가 절대주의의 광신자인 반면, 아누이의 크레온은 이성적이면서도 사랑하는 조카딸을 끝까지 죽음으로부터 구원하려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인물이다. 안티고네 또한 고대 비극에서는 신의 법령을 고수하려는 강한 의지를 가진, 위엄 있고 당당하며 성숙한 자세가 돋보이는 인물이지만, 현대극에서는 현실에 대항하며 순수하고 절대적인 것을 추구하다가 막상 죽음에 이르러서는 신념과 자신감을 상실하는 어린 소녀에 불과하다. 그러나 아누이의 안티고네는 이러한 미성숙한 태도에도 불구하고 맑은 영혼과 순수한 양심 때문에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