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인! 국민인!!
열정적인 삶을 사는 것이 성공입니다! / 금속공예가 이상구(생활미술·80졸) 동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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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무한한 가능성
하지만 이상구 동문은 고심 끝에 공방을 차리기로 결심했다. 예술가의 길에 접어들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다. “저도 일반적인 직장에서 평범하게 살고 싶기도 했죠. 하지만 그렇게 해서 성공한다 해도 행복하지는 않을 것 같았습니다.” 이상구 동문은 졸업하기 직전인 1979년 친구 2명과 함께 공방 ‘아르누보’를 설립했다. 그리고 그는 다짐을 했다. 진정한 작품을 만들기 위해 작품 활동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그의 뒤에는 김승희(금속공예) 교수가 있었다. “김승희 교수는 인생의 스승이십니다. 그분은 제가 자만했던 시절 진정한 예술의 의미를 알려주셨습니다.” 김승희 교수의 영향은 지금의 그가 있도록 했다. 지금도 작업실에 김승희 교수의 작품을 걸어놓고 보면서 ‘나를 위한 작품이 아닌, 남을 위한 작품을 만들라’는 철학을 가지고 작품에 임한다. 청산에 살어리랏다! 어렸을 적부터 개천에서 놀고, 들판에서 뒹굴며 놀았습니다. 계속 들길을 따라 걷다가 집을 잃은 적도 있으니까 아마 그때부터 자연인의 끼가 있었나 봅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상구 동문은 북한산 끝자락에 손수 공방을 만들었다. 자연을 좋아하는 것에 걸맞게 오른쪽 창에는 북한산의 경관을 끌어들였고 왼쪽 창으로는 꽃필 준비를 마친 수선화들이 잘 보이게 심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돼지나 소를 키우는 축사였습니다. 10평으로 시작해 지금의 모습으로 하나하나 만들어 나갔죠.” 자금이 없어 부득이하게 직접 공방을 만들어야 했지만 그 덕에 운치 있는 공방을 만들 수 있었다. 이후 1997년 공방을 ‘카퍼하우스’로 개명하고 공방과 카페, 그리고 전시장까지 접목한 문화공간으로 창조해냈다. “처음에는 작품을 사러 오는 사람들에게 차를 대접했는데, 사람들이 차 마시는 것을 부담스러워 해서 팔기 시작했죠. 그러다가 카페가 됐습니다.” 카페를 병행하면서 사람들의 발길은 더욱 잦아들었다. 입소문이 퍼져 분위기 있는 명소로 호응을 얻은 것이다. 때문에 이상구 동문은 찾아오는 손님들이 자신의 작품과 함께 문화 시설을 즐기게 하기 위해 수선화축제와 문화공연을 준비해 손님을 맞는다. 사람들이 동감할 수 있는 작품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금속가습기다. 금속으로 가습기를 만드는 것이 상상이 안되지만 실제로 기능의 범위를 넓혀 아름다운 가습기를 탄생시켰다.
목표를 이루는 것이 목표입니다!
자기 자신을 갖되, 버려라! 인터뷰를 하는 동안 이상구 동문은 지금까지 만나왔던 사회적으로 성공한 인물들과는 다른 느낌이 들었다. 이렇다할 큰 업적을 이뤄서 가지는 자신감보다는 자신의 삶에 스스로 만족하고 인생을 즐기는 모습이 부럽기까지 했다. 자, 이제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내가 지금 무엇을 향해 가는 길인지. <출처_국민대 신문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