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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속의 국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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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시평] 민주정치 두번 죽이나(김영작 교수)


2002년 3월 14일(목) - 중앙일보 -


플라톤은 '국가(The Republic)'라는 제목의 대화편(제8권)에서 아테네 민주주의가 몰락해 가는 모습을 개인의 영혼 타락상에서부터 국가사회의 혼란상황에 이르기까지 그다운 뛰어난 통찰력으로 분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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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요점을 보면 민주주의는 법도 질서도 무시하는 '과잉 자유'와 악(불법)에로의 '하향 평준화' 때문에 망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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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근태 고문 처벌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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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민주주의 시대가 되면 사람들은 마치 "모든 것이 다 허용돼야 한다"는 듯이 자유를 요구한다. 자유와 다양성을 인정하라는 요구에 밀려 무엇이 선(善)이고 무엇이 악이며,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를 판단할 기준마저 모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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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같은 지적.도덕적 혼미상태는 결국 모든 사람과 모든 사물을 하향 평준화하고, 불법의 만연을 서로 용납해 줄 수밖에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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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보편화'와 '악에 대한 관용'이 일상화되는 것이다. 플라톤에 따르면 바로 이같은 양상이 민주주의가 자멸하기 전야(前夜)에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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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태 민주당 고문의 불법 정치자금 사용 고백과 이를 계기로 새삼 드러나고 있는 정치권의 거짓과 불법, 이에 대한 정부 당국의 속수무책, 그리고 일반인들의 가치판단의 혼돈은 바로 플라톤이 묘사한 아테네 민주주의가 자멸해 가는 모습을 방불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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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고문의 고백은 그 동기가 무엇이든 간에 우리나라 민주정치의 근본적 문제점들을 다시 한번 부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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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정치권이 거짓과 위선으로 가득 차 있고 불법이 보편화해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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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이같은 거짓과 불법에 대해 관계 당국이 아예 단속의 의지가 없거나 단속을 포기한 상태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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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적어도 정치자금에 관한 한 범법자에 대한 법적 처리가 반드시 '정치적 정의'가 아닐 수도 있다는 딜레마에 봉착해 있다는 점이다. 김근태 고문을 처벌할 경우 거짓을 말한 범법자는 처벌하지 못하고 진실을 말한 범법자만 처벌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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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적 정의란 그런 것이라고 할지 모르나 국민의 상식과 법적 정의가 너무나도 동떨어져 있으면 법이 법답지 못해지고 '닭 잡아 먹고 오리발'이 상책이라는 오도된 가치관이 사회를 지배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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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정치인 모두가 애초부터 정치자금법은 지킬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불법을 감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뒤집어 보면 불법을 전제로 법을 제정하고 있으니 법이 법일 수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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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불법행위가 너무나도 널리 퍼져 있어 정치인 스스로는 물론 일반 국민까지도 정치인들의 불법에 대해 무감각해지고 무엇이 정치적으로 옳은 행동인지 헷갈린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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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태 고문의 고백에 대해 '잘했다''못했다' 평가가 엇갈리고, 본인은 바른말 때문에 오히려 정치적으로 손해만 보는 것도 정치인 모두가 범법자인 '악(惡) 평준화' 상황에서 옳고 그른 것의 판단을 그르치는 가치관의 혼돈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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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말해 한국의 민주정치는 아예 불법을 전제로 출발해 실제로 불법이 일상화돼 있으며, 이러한 불법에로의 '악 평준화' 때문에 불법에 대한 가치판단마저 혼미해져 있는 상황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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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이 묘사한 아테네의 상황을 넘어 법치와 준법을 아예 포기한 한국 민주주의는 '이미 죽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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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거공영제 등 정착 급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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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를 막론하고 민주주의를 말하고 정치 발전을 주장하는 정치인이라면 '사망한' 한국 민주주의의 부활을 위해 선거공영제의 검토, 정치자금법의 보완 등 법적.제도적 장치의 마련을 서두르고, 실천 면에서도 위선과 거짓의 정치행태에서 벗어나 준법정치를 솔선수범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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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민주정치를 활성화하고 당내 민주주의를 제도화하는 방안으로 고안된 '국민참여경선'에서도 금품살포와 대규모 선거인단 동원전이 전개되고 있다고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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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제도를 또 죽이고 있는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정부와 여야 정치권은 다가오는 지방선거와 대선이 한국 민주정치를 두번 죽이는 행위가 되지 않도록 민주정치 부활을 위한 제반 조치를 서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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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榮作(국민대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