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대학교

언론속의 국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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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 청바지의 변신(국민대 의상디자인학과 4학년 이진윤)
2001. 9. 11. - 국민일보 -


두꺼운 천과 투박한 바느질,단단한 금속 리벳에 가죽 벨트.

올드 패션을 강조한 정통 청바지(blue jeans)의 모습이다.디자인이 소박하고 재질이 질긴 청바지는 세계적인 장수 히트상품으로 꼽힌다.

익히 알려진 것처럼 청바지는 원래 광산노동자의 작업복으로 만들어졌다.미국 서부지역에서 텐트를 만들어 팔던 독일 출신의 사업가 리바이 슈트라우스는 1853년 군납용으로 10만여개의 텐트를 준비했다가 납품이 성사되지 않아 고심하던 중 우연히 아이디어를 얻었다.슈트라우스는 금광촌 광원들이 모여 앉아 헤진 바지를 꿰매는 모습을 보고 텐트용 캔버스 천으로 질긴 옷을 만들 수 있다는 착안을 한 것이다.슈트라우스는 청바지를 생산한 지 1년 만에 2000만벌을 팔아 돈방석에 올라 앉았다.

가난한 노동자들이 착용한 청바지는 곧 빈곤을 상징했지만 1950년대와 60년대 기성세대의 권위를 거부하는 청년문화와 반전운동의 물결이 확산되면서 거칠고 반항적인 이미지를 지닌 젊은이의 옷으로 자리를 잡는다.70년대와 80년대의 청바지 열풍은 모스크바와 베이징 등 공산권 도시에도 어김없이 불어닥쳐 코카콜라와 함께 자본주의의 상징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6?25 전쟁 이후 국내에 소개된 청바지는 70년대 초 청바지 차림에 통기타를 들고 나온 양희은을 비롯한 포크송 가수들의 활약으로 본격적인 붐을 일으켰다.한때 청바지를 안 입은 청년은 간첩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대유행이었다.

그러나 청바지가 투박한 이미지의 정통 스타일만 고집했다면 150년 가까이 히트 상품의 명성을 이어오기는 어려웠을 것이다.미국에서는 2차대전 후 베이비붐 세대가 중년으로 넘어간 80년대 후반부터 청바지 매출이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했고 국내에서도 사정이 비슷했다.청바지 업계는 90년대 들어 청바지를 고급화하고 스타일을 다양하게 변화시킨 이른바 ‘패션 진’으로 돌파구를 마련했다.‘닉스’ ‘베이직’ 등 국산 브랜드가 외제를 제치고 국내시장을 장악한 것도 이때쯤이다.

최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최된 의류박람회 ‘매직 쇼’에 국민대 의상디자인학과 4학년 이진윤씨가 새로운 변화를 시도한 ‘파티 진’을 내놓아 150만달러 상당의 해외 주문을 받았다고 한다.레이스와 화려한 장식을 붙여 청바지를 파티복으로 격상시킨 발상이 돋보인다.‘파티에는 정장’이라는 고정관념을 깬 것이다.

청바지가 19세기 중반부터 21세기 초까지 히트 상품으로 살아남은 것은 바로 전통을 유지하면서도 고정관념을 뛰어넘은 변신의 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경제가 어려울 때일수록 발상의 전환을 통해 돌파구를 찾는 지혜가 더욱 절실하다.


김성기논설위원 kimsong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