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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속의 국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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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럼>日 국립묘지案 왜 나오나<<이원덕 국민대교수 ·일본정치>>
2001년 7월 3일 - 문화일보 -

매년 8월15일이 가까워 오면 일본에서는 총리, 각료의 야스쿠니(靖國)신사참배문제가 심각한 정치쟁점으로 부각되는 것이 근년 들어 상례가 돼왔다. 이는 1985년 나카소네 총리가 전후 총리로는 처음으로 야스쿠니 신사를 공식 참배함으로써 일본 국내외에 논란을 불러일으킨 이래의 일이다. 최근 일본 국민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등장한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8월15일 야스쿠니를 공식 참배하겠다는 의사를 수차례 표명하여 야스쿠니 문제가 다시금 뜨거운 이슈가 되고 있다. 나카소네의 참배 이래 역대 일본의 총리들이 주변국의 강력한 반발과 국내의 비판세력을 고려하여 공식참배를 자제해왔다는 점을 생각하면 고이즈미의 언행은 극히 이례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일반적으로 총리의 야스쿠니 공식참배는 두가지 점에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첫째, 정교분리 원칙의 위배 가능성이다. 야스쿠니 신사는 기본적으로 전몰자의 위패를 안치해 놓은 일종의 위령시설이지만 그것의 법적 성격이 종교법인으로 돼 있어서 총리의 공식참배는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정교분리 원칙을 위배할 소지가 농후하다. 일본정부도 “대신 자격으로 참배하는 것은 위헌의 우려가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는 견해를 취하고 있다. 둘째, 야스쿠니에는 태평양 전쟁 A급전범의 위패가 놓여 있어 총리의 참배문제는 일본의 과거 전쟁책임 및 역사인식과 깊은 관련성을 갖는다. 과거 일본의 침략과 지배하에서 고통과 희생을 강요받았던 피해자 입장에서 볼 때, 야스쿠니 신사는 다름아닌 군국주의와 침략의 상징물인 것이다.

이런 문제점을 돌파하기 위해 오부치 내각시 자민당 내에서는 내외의 반발을 무마하면서 공식참배를 실현하기 위한 안으로서 종교색을 희석시키는 야스쿠니의 특수법인화가 논의되기도 하고 또 태평양 전쟁 A급전범을 야스쿠니로부터 분리하자는 방안이 검토되기도 했다. 또 최근에는 야스쿠니 대신 국립묘지를 설립하자는 안이 야당에 의해 제기된 바 있다. 사민당 당수인 도이 다카코 의원은 신원불명의 전몰자들의 유골이 납골돼 있는 국립 ‘지도리가부치’묘원을 국립묘지로 지정하는 방안을 제안했으며 민주당의 하토야마 유키오 대표도 야스쿠니 대신 국립묘지를 새로 설립하자는 주장을 내놓은 바 있다.

말하자면 미국의 알링턴 국립묘지와 동격의 것을 만들어 내외의 요인들이 참배토록 하자는 방안이다. 고이즈미 총리는 일단 국립묘지 설립 방안에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했으나 이 문제가 단기적으로 해결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고이즈미의 국립묘지 긍정검토 발언은 무엇보다도 야스쿠니 참배에 대한 아시아의 반발을 무마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국립묘지가 정비돼 있지 않기 때문에 야스쿠니에 참배한다는 논리다.

고이즈미의 공식참배에는 현재 90%가까운 일본인이 지지를 보내고 있다. 물론 이 배경에는 전몰자들에게 애도와 감사의 마음을 표하고 싶다는 총리의 순수한 토로가 일본인의 심정에 공감을 얻고 있는 측면을 무시할 수 없다. 더욱이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고이즈미 총리는 보수층으로부터 몰표를 획득하려는 선거전략의 일환으로 의도적으로 야스쿠니 참배문제를 전면에 부상시키고 있는 듯하다.

야스쿠니 문제는 기본적으로 90년대 중반이래 현격하게 나타나고 있는 일본 사회의 우경화 흐름과 맞물려 있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일본 우경화의 징표는 이미 역사교과서 파동으로 극명하게 나타난 바 있으며 히노마루·기미가요의 법제화, 평화헌법 개정논의의 본격화, 집단적 자위권의 용인 움직임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일본의 우경화는 10년에 걸쳐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경제상황과 혼란을 거듭하고 있는 정치상황에 대한 일종의 사회심리적 초조감이 나름의 탈출구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국가 상징에 대한 결집현상으로 표출되고 있다고 진단된다.

총리의 야스쿠니 공식참배는 일본 나름의 어떠한 구실과 변명을 늘어놓아도 정당화되기 어려운 역사인식의 문제요, 일본의 진로를 가늠하는 국제적인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대다수 아시아인들은 야스쿠니 참배문제야말로 일본이 과거 침략의 역사를 직시하고 진정으로 참회하는가를 평가하는 시금석으로 보고 있다는 점을 일본 지도자들은 다시금 깨달을 필요가 있다.

<이원덕 국민대교수 ·일본정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