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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속의 국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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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논단―김동훈(국민대 교수·법학)] 학생들을 放牧하라


2002. 4. 19 - 국민일보 -



최근 채식 열풍과 더불어 육식의 폐해가 논의되면서 식용 가축들의 ‘비동물적’인 사육환경이 문제가 됐다.더 빨리,더 많은 고기를 얻기 위해 가축들은 거의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에서 햇볕 한 번 쬐지 못하고 항생제가 든 사료를 주입받으며 생산공장의 하나의 부속품처럼 관리되고 있다.

이에 따라 가축들이 받는 스트레스가 바로 고기나 우유 등 생산물의 질에도 악영향을 미친다는 점과 동물의 권리에 대한 의식이 확산되면서 방목으로 키워지는 가축들이 선호되기 시작했다. 너른 풀밭에서 자유로이 뛰어다니며 키워지는 가축들로부터 얻어지는 축산물은 ‘방목’이라는 마크가 붙어 훨씬 비싸게 팔리지만 오히려 인기가 높다.

이를 보면서 나는 우리의 교육문제를 생각한다.7년 전 강원 춘천의 한 고등학생이 학교교육을 고발하는 내용의 진정서를 대통령 앞으로 제출한 일이 신문지상에 실렸다.“저의 학교생활은 동물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아침 7시 전에 집을 나가 밤 11시가 넘게 돌아오면 그냥 쓰러지고 맙니다.매우 건강한 편인데도 하루종일 해를 못 보고 지내니 운동장에서 어지러워 쓰러지기도 했습니다.몸무게는 입학 당시보다 5㎏이 줄었습니다.맞지도 않는 책걸상에 온종일 앉아 있으니 허리가 끊어질듯 아프고 무릎도 시큰거립니다.친구들도 다 비슷한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이처럼 수능 점수를 올리기 위해 햇빛도 못 보고 운동도 못 하고 고통받는 이 학생의 절규는 바로 고기 근수를 올리기 위해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한 채 사육되는 식용 돼지의 경우와 무엇이 다르겠는가.지난 15일자 미국의 타임지는 커버 스토리에서 아침 일찍부터 새벽 2시까지 학원을 전전하는 한국 고등학생의 하루 스케줄을 원정 출산 열풍과 더불어 소개해 우리의 낯을 뜨겁게 하고 있거니와 우리 청소년들의 삶은 가히 가혹행위요,인권유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가인권위원회에 고발될 정도의 것이다.

문제는 학생들을 어떻게 이 지옥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는가이다.동물의 사육환경이 개선되는 직접적인 압력이 바로 소비자들의 인식 전환과 선택으로부터 나온다면 중등학교를 이러한 환경에서 벗어나게 하는 문제도 일차적으로는 학생 선발권을 행사하는 대학들이 책임질 수밖에 없다.대학들이 지금처럼 수능이라는 저울 하나 갖다놓고 ‘근수 매기기’를 해 학생을 선발하는 한 중등교육은 한 근이라도 더 나가는 ‘비육우’를 생산하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대학 스스로 튼실한 중등교육만이 생산적인 대학교육의 모밭이라는 거시적 안목을 가지고 선발의 기준을 바꾸어야 한다. 우선 대학들은 선발에 더 많은 시간과 전문가적 역량을 투자해야 한다.일선 중등학교 현장을 수시로 가보고 어느 학교가 참교육의 본질에 가까운 교육을 하는지를 살펴보는 한편 어느 학생이 참으로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로 자라날 가능성이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나는 ‘교육적 선발’은 하나의 예술이라고 본다.선발에 필연적으로 따르는 경쟁의 압력이 교육적으로 플러스적인 효과를 갖도록 유도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대학들이 교육자적 자세를 새롭게 하고 헛된 권위주의를 버려야 한다.그저 신입생들의 점수 커트라인을 가지고 목에 힘주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러나 대학들이 권위주의와 편의주의를 쉽게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서울대가 내년 입시에서 다시 수능 점수의 반영 비율을 높이겠다고 하지 않는가.그러므로 이제는 교육의 최종 소비자들이 나서야 한다.바로 학부모와 학생 그리고 일반시민들이다.이들이 나서서 대학이 그릇된 선발권의 행사로 중등교육을 유린하지 못하도록 압력을 가해야 한다.교육단체들도 힘떨어진 교육부 앞에서 시위할 것이 아니라 몇몇 힘쓴다는 대학의 본부 건물 앞으로 몰려가 명색이 최고의 교육기관이라는 그들의 무지와 이기주의를 비난해야 한다.

우리의 청소년들은 봄 햇볕의 따사로움과 새소리,들꽃의 아름다움을 느끼면서 커야 한다.기성세대는 이들에게 최소한의 인간적인 교육환경을 마련해 줄 의무가 있다.그렇지 않을 경우 그 손실은 고스란히 증폭되어 우리 사회에 되돌아온다.건강한 사회를 원한다면 이 사회를 이끌어갈 청소년들의 교육환경을 건강하게 만들어야 함은 당연한 이치다.

교실에서 선생님이 보는 가운데 급우를 흉기로 살해했다는 끔찍하기 짝이 없는 뉴스를 들으며 교육이 아니라 감금 사육이 이루어지고 있는 현재의 교육환경이 서서히 불러올 재앙을 걱정한다.이제 우리의 청소년들은 방목(放牧)되어야 한다.

김동훈 (국민대 교수·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