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푸틴이 택시운전? 그래도 행운아, 차라도 있었으니까” / 란코프(교양대학) 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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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 휴지도 없어 붕괴 불가피
옛 소련 시절 제2의 도시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푸르크)에서 태어난 안드레이 란코프(58·국민대 교수)는 스물여덟 살이던 1991년 12월 세상이 뒤바뀌는 경험을 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어깨를 겨루며 50년 가까이 세계를 양분했던 소련이 해체된 것이다. 존경과 공포의 대상이었던 조국은 하루 아침에 15개 공화국으로 뿔뿔이 나뉘었다. 세계 최강국이라는 자부심은 망한 나라의 가난한 국민이라는 수치심으로 변했다. 물론, 희망도 있었다. 공산주의 체제를 버리고 자본주의 새 옷으로 갈아 입은 만큼 머지않아 미국과 영국, 프랑스 등 서구권 국가들을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였다. 희망과 불안이 교차하는 가운데 먼저 찾아온 것은 혼란이었다고 란코프 교수는 기억했다. 지난 17일 서울 정릉에 있는 국민대 북악관에서 그를 만나 당시 상황과 소회를 들었다.
“어려서부터 중국 등 동아시아에 관심이 많았다. 1981년 레닌그라드대 중국사학과에 입학했다가 교수의 권유로 한국사학과로 옮겼다. 석·박사 기회를 주고, 북한 유학도 시켜준다길래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전과’했다. 1984~1985년 김일성종합대학에서 한국어를 배웠다. 운이 좋게도 1988 서울올림픽 이후 노태우 정부의 북방 외교가 본격화했고, 한국 대표단이 러시아를 자주 찾았다. 소련 해체 뒤에는 하루이틀 이들을 따라 다니며 통역하면, 조교수 수입 한달치와 맞먹는 수입을 얻을 수 있었다. 김우중 대우 회장 일행을 통역한 것도 기억난다.”
러시아 공산당 지지자들이 21일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서 스탈린 탄생 142주년을 기념하는 푯말을 들고 있다. 모스크바/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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