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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섬情談] 두바이 미래박물관 / 이경훈(건축학부) 교수

 

 

지난 22일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 미래박물관이 개관했다. 마천루 사이에 주눅 들지 않고 서 있는 모습이 당당하다. ‘미래박물관’이라는 명칭은 형용모순이라기보다는 번역의 한계에 가깝다. 일반적으로 전시나 수장뿐 아니라 연구 기능을 함께 갖출 때 ‘museum’이라고 부르는데 박물관이라는 19세기 번역으로는 그 뜻을 온전히 전달하기 어렵다. 전쟁기념관 명칭을 놓고 논란이 일었던 ‘memorial’이나 단순 기념비 이상을 지칭하는 ‘monument’도 마찬가지다.

 

건물은 푸른 잔디 언덕 위에 놓인 퉁퉁하고 찌그러진 반지 모양이다. 반지 안의 허공이 아직 알 수 없는 미래 공간이라는 설명이 그럴싸한데, 그 안에 펼쳐지는 레이저쇼는 더욱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내부에선 비범한 공간과 몰입형 전시가 펼쳐져 미래 이미지를 한층 강화한다. 건물 외벽은 아랍 문자 시구로 창 패턴을 만들어 고유 전통과도 어색하지 않게 만난다.

 

모하마드 알게르가위 내각부 장관은 “이 박물관은 변화하는 환경에 따라 전시 콘텐츠가 끊임없이 진화하는 ‘살아있는 박물관’이다”라며 미래학자, 혁신가, 대중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조하는 공간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고는 인공지능, 우주탐사 등 빠르게 진화하는 지식 영역을 반영하고 새로운 사고, 새로운 역량을 접목해 나갈 예정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두바이 미래박물관이 과거의 유물을 전시하는 공간이라는 통념을 깨고 인류의 삶을 진일보시키는 새로운 개념, 생각, 비전, 혁신 등을 실험할 수 있는 공간을 지향한다는 그들의 목표를 듣고서는 허를 찔린 느낌이다.

 

이 특이한 건물에서 몇 가지 건축적, 문화적 함의를 찾을 수 있다. 첫째로는 건축가 선정 과정이다. 설계를 담당한 영국 출신의 건축가 숀 킬라는 2015년에 사무실을 열었고 국제적으로는 무명에 가깝다. 설계안은 공모 과정을 거친 것도 아니었다. 다만 20년 이상 두바이에 거주하며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한 경험을 높이 사서 믿고 맡긴 결과였다. 설계 공모가 투명한 경쟁과 선정의 과정을 거치는 외형적 공정성을 갖추고는 있지만 부작용도 만만치 않아서다. 혁신적인 설계안을 제출하기보다는 무난함을 택하게 해서 현실적으로 위축되게 하는 효과를 나타내는 게 대표적이다. 건축가를 선정하고 창의적인 최선의 안을 끌어내는 방안과 공모를 통해 항상 엇비슷한 결과를 얻는 현실 사이의 고민은 앞으로도 한동안 한국 건축의 과제로 남겨질 듯하다.

 

둘째로는 박물관 건물이 최신의 기술을 활용한다는 점이다. 단단한 외부 벽체를 만들고 기둥이 없는 자유로운 내부 공간을 만든 뒤 3D 프린팅 기술로 외장 패널을 구성하고 재생에너지 비율을 높이는 등 신기술에 대한 실험과 도입에 적극적이다. 이는 미래라는 주제 및 건축가 선정 방식과 관계가 있지만, 기술에 대한 전반적인 사회 인식이나 태도와 더 큰 관련이 있다. 물론 안전과 경제성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검증된 공법과 재료만을 요구하는 분위기가 엄존한다.

 

마지막으로 미래와 문화에 대한 태도다. 석유 자원 고갈에 위협을 느끼는 중동 국가가 시설을 만들어 미래 담론과 이미지를 선점하려는 시도는 기발하며 수긍이 가는 측면이 있다. 더구나 유목민 특성상 유적이나 유물이 풍부한 것도 아니어서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분관을 유치하는 등 적극적 문화정책을 펴온 연장선으로 보인다. 새롭게 만들고 빌려야 할 만큼 국제도시에서 문화의 역할은 중요해졌다. 부족한 유물 탓을 하거나 시대착오적이며 뻔한 박물관을 반복하거나 복제하고 있지 않은지 되돌아볼 만한 대목이다.

 

건물 외부에 새겨져 있다는 시구는 인상적이다. “우리는 수백년을 살 수는 없지만, 우리의 창의적 노력의 결과는 우리가 사라진 후에도 오랫동안 유산으로 남길 수 있다. 미래는 그것을 상상하고 설계하고 실행하는 이들의 것이다.” 그러고 보면 건축은 미래의 유산을 설계하는 일이니, 신중하고 또 신중하게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