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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섬情談] 세운상가를 콤팩트하게 / 이경훈(건축학부) 교수


지난 21일 서울시는 녹지생태도심 재창조 전략을 발표했다. 서울 도심 세운구역에서 건축물 높이와 용적률 등 기존 건축 규제를 일부 완화해서 얻은 땅을 녹지화한다는 것이다. 건물주는 지을 수 있는 용적에는 변화가 없거나 오히려 인센티브가 있으니 손해가 없고 공공은 녹지를 추가로 얻을 수 있으니 이득이라는 것이다. 낙후된 도심, 특히 사대문 안 현황에 대한 문제의식과 취지에는 공감한다. 특히 세운상가는 서울에서 중요한 남북축이다. 남북의 거리가 중요한 이유는 온종일 해가 들어 밝기 때문이다. 항상 햇볕이 그득한 세종로가 남북방향이고 다른 주요 간선도로인 종로나 을지로 퇴계로가 동서 방향인 점과 비교해보면 쉽게 차이를 알 수 있다. 세운상가가 이토록 중요한 남북축을 가로막은 채 낡아 있으니 도심 전체를 위해서도 해결해야 할 문제이기는 하다. 다만, 전임 시장이 전면적인 재개발 대신 도시 재생을 추진했었고 이를 다시 번복하는 발표여서 우려가 되고 정책의 방향 또한 마냥 찬성하기는 쉽지 않다. 발표에는 녹지, 생태, 재창조같이 착하고 옳아 보이는 단어들이 나열되어있어 반박하기 어렵다. 하지만 도시에 대한 이해와 방향이 탄소중립 친환경과 거리가 먼 퇴행적이라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우선, 근거로 제시한 서울 도심 녹지 비율이 3%라는 수치는 정확해 보이지 않는다. 서울시 전체로 녹지 비율은 20%를 상회한다. 다만, 경계부 산지에 편중되어 도심에는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공원의 역할을 하는 고궁 등을 녹지에 포함하면 수치는 훨씬 올라간다. 따라서 녹지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전제는 확인이 필요하다.

 

둘째로 건폐율을 줄이고 건물을 높이 짓는 대신에 녹지를 확보하겠다는 발상은 이미 백년전부터 서구의 여러 도시가 시도했고 실패했던 아이디어이다. 커다란 공원을 만들어 놓고 가느다란 건물을 짓겠다는 발상은 거리를 걷는 이가 없어 텅 비게 하고 야간에는 우범지대로 변해 범죄가 늘어가는 부작용이 더 커서 폐기된 바 있다. 걷는 이가 없으니 상점은 문을 닫게 되고 간단한 식료품도 자동차를 타고 대형마트에서 사야 하는 미국식 교외의 생활양식을 강요하게 된다. 도심 그것도 육백년 도읍인 역사 도시이자 인구 천만의 서울의 도심에는 적합하지 않은 방향이다.

 

셋째로 종종 녹지를 도시에 활기와 생명을 불어넣는 마법 같은 도시 구성요소로 생각하지만 지나치면 반대의 효과를 초래한다. 도심에서의 녹지는 걷기에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한가롭게 산책하기에는 적합하지만, 한시가 급한 도시 생활과 업무공간에서는 50m 길이의 녹지도 지루하다. 모범적인 사례로 든 경의선 철도 구간을 공원화한 연트럴 파크에 사람이 모이고 걷는 이가 많은 것은 녹지보다는 그 연변에 늘어선 독특한 상점과 카페 때문인 이유가 더 크다. 미국의 교외화 등을 연구하는 도시학자 제프 스펙은 그의 저서 ‘걸어 다닐 수 있는 도시’에서 좋은 도시란 걷기에 좋은 도시이며, “녹색은 잘못된 색이다”라고 단언할 정도이다.

 

세계의 여러 도시 특히 도심은 자동차를 폐기하고 걷기와 그에 따른 환경적, 경제적 효용을 극대화하는 ‘콤팩트 도시’로 방향을 전환하는 것이 추세이다. 콤팩트 도시는 도심의 나무와 녹지의 역할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 방향과 쓰임새가 ‘도시적’일 때 효과가 긍정적이며 극대화된다는 것이다. 사례로 제시한 경의선 숲길처럼 폭이 좁고 면적이 작더라도 주변 건물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을 때 사람을 걷게 한다. 그리고 사람이 걸을 때 상권이 살아나고 경제가 활력을 얻게 되며 도시가 본연의 기능을 되찾고 작동하게 된다. 걷는 도시가 탄소배출과 공해를 줄이고 안전한 공간을 만드는 것은 자명하다. 콤팩트하게 새롭게 태어나는 세운상가를 기대한다.

 

PS. 콤팩트 도시는 작년 시장 선거에서 상대 후보의 공약이기도 했다. 천만 시민의 삶의 터전인 도심을 만드는 일인데 상대 공약을 대신 실현하는 것이 어찌 부끄러운 일이기만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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