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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속의 국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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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훈의 도시건축 만보] 양치의 공간학 / 이경훈(건축학부) 교수

 

 

공항 입국장은 떠날 때 못지않은 설렘이 있다. 열흘 남짓 해외여행이었지만 고국은 다시 새롭고 반갑다. 맞이하는 관리들의 표정도 예전에 비해 훨씬 부드럽고 친절하다. 아마도 공간이 이십 년 전 김포나 8시간 전에 떠나온 칙칙한 외국 공항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세련되고 화사하기 때문일 거로 생각했다. 역시 공간은 사람의 감정도 행동도 규정한다. 우아한 공간은 우아한 행태와 태도를 만든다.


버스를 타기 전 미리 들른 화장실에는 익숙하면서도 낯선 풍경이 펼쳐졌다. 제복 입은 공항 직원 서넛이 양치하고 있었다. 요란하게 거품을 튀며 헛구역질 소리까지 곁들인 장면은 한국 보건교육의 승리라 할 만했다. 하지만 밤샘 비행 후 몽롱한 머릿속에서는 오랜 의문이 떠올랐다. 양치는 공적인 행위인가? 용변처럼 칸막이 뒤에서 사적으로 행해야 하는 일인가? 그 정도는 아니지만 입을 헹구거나 여성이 화장을 고치는 정도로 조심한다면 받아들여질 수 있는 일인가?


건축은 사적인 공간을 만드는 일이다. 그런데 사적인 공간은 상대적이며 유동적이다. 공항을 통해 입국하는 과정은 나의 나라로 돌아온다는 점에서 외국에 비해 사적이다. 버스를 타고 서울로 들어서며 다시 나의 도시로 들어오게 되면 상대적으로 사적이다. 아파트 단지에 들어서며 한 겹 더 사적인 공간을 만난다. 아파트 현관, 엘리베이터를 거쳐 집안에 들어서서 점점 더 사적인 영역으로 진입한다. 거실 또한 다른 가족들과 공유하는 상대적으로 공적인 공간이므로 완벽한 프라이버시는 방에 들어설 때 비로소 완성된다. 이를 건축학에서는 공간의 위계라고 말한다. 즉, 건축은 점진적으로 사적인 공간을 향하며 급격한 변화는 공간의 배열을 혼란스럽게 한다는 것이다.


미국 도시학자 줄리안 바이나트 교수는 공적인 공간과 사적인 공간의 차이는 소유주가 공공인가 사적인가 구별이 아니며, 개인의 권리와 의무 관계가 달라지는 공간적 경험이라고 정의한다. 각각 단계별로 개인의 복장, 언어, 행동양식이 달라진다. 물론 사회적·문화적 배경에 따라 그 기준은 달라지기도 한다. 그 기준에서 벗어날 때 혼란스럽거나 무례로 받아들인다.


예를 들면 공공장소에서 휴대전화의 사용 같은 것이다. 공공공간에서 정적을 깨며 사적인 대화를 큰소리로 나누는 것은 암묵적으로 합의된 권리와 의무에 균열을 가져오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공간적으로는 찜질방이 대표적이다. 분명 대중이 함께 이용하는 공공장소지만 안방에서나 일어날 법한 매우 사적인 일들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코를 골며 잠이 들거나 편한 자세로 TV를 보기도 한다. 심지어는 지나친 애정행각을 삼가 달라는 호소문이 붙어 있을 정도다. 이를 외신들이 흥미롭게 관찰하고 있다. 찜질방에 가는 것은 쇼핑몰에서 목욕하는 것과 비교할 정도로 공·사 공간의 혼란이 있다는 것이다. 찜질방의 쇠퇴는 팬데믹 영향이 크겠지만 공간적 자각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우리나라 특유의 ‘방’ 문화도 공적·사적인 공간에 대한 위계를 전복하기도 한다. 식당의 방이 대표적이다. 공공장소라 할 수 있는 식당에서 급격하게 사적인 공간 ‘방’으로 전환하는 장치다.


도시 생활은 사적인 일들을 공공장소에서 하게 되는 변화를 의미한다. 거실에서 홀로 시청하던 운동 경기를 익명의 이웃과 같이 보는 스포츠 바가 좋은 예다. 멀쩡한 집을 떠나 카페에서 공부하는 이들도 있다. 각 공간의 공공성 또는 사적인 정도에 따라 행동을 달리해야 하는 도시 특유의 행동양식, 즉 매너가 탄생한다. 그리고 유명한 영화 대사처럼 매너가 신사를 만든다.


곧 개강이다. 학과 특성상 밤샘 작업이 다반사여서 출근길 복도에서는 양치하며 걷다가 어설프게 인사하는 학생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어떤 말을 해줘야 할지 마땅치 않다. 고작 양치 하나 가지고 공간의 위계나 프라이버시, 매너를 따지는 꼰대가 될 수는 없는 일이다. 얼버무리며 격려해야 한다. “그래! 밤새 수고했다.”


국민대 건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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