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어디서든 마치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듯, 책은 손만 내밀면 천 년, 2천 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선인들을 만날 수 있게 한다. 수백 년 전의 일이 바로 어제 일어난 듯, 시공간의 벽이란 없다. “고문진보”에 당나라의 문장가 유종원이 쓴 ‘재인전’이라는 당대의 목수 이야기가 나온다. 컴퓨터니 자동차니 물질문명이 그렇게 변하였음에도 어쩌면 그렇게 오늘날의 건축가 이야기와 한 치도 어긋남이 없을 수 있을까. 나도 모르게 무릎을 탁 쳤다!
유년시절 내 가슴을 설레게 한 책
아마 주황색 표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릴 때 내가 가장 열심히 읽었던 책은 초등학교 2,3학년 때 나의 책상 위에 자리 잡은 계몽사 소년소녀세계문학전집. 그리스 로마신화를 시작으로 보물섬, 알프스의 소녀, 소공자, 소공녀 등을 망라하는 총 50권짜리였다. 빠듯한 살림에 월부로 샀던 그 책을 읽고 또 읽었다. 책을 한 장 넘길 때마다 들게 하는 모든 상상과 모험, 기쁨과 슬픔…….유년 시절의 나에게 그 책들은 감정이입과 동경의 원천이었다. 그 후에도 신한국문학전집이나 그레이트북스 시리즈 등의 책을 읽으며 나의 지적인 호기심을 충족했다. 솔직히 고백하면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읽었다는 어린 나의 허영심만 충족시켜준 책도 꽤 있었다. 그래도 한 권 한 권 용돈이 생길 때마다 사 모았던 책들이 당시 내 가슴을 설레게 했던 것은 분명하다.
저자에 대한 신뢰
나는 일간지의 서평을 관심 있게 읽는 편이고, 주로 서평에서 소개된 책을 인터넷으로 구입해서 읽는다. 책을 한 권 한 권 읽다보면 저자에 대한 신뢰가 생긴다. 요즘 아이들이 하는 말로 ‘feel'이 탁 꽂힌다! 그래서 그 저자의 책을 모두사서 모조리 읽어가면서 저자의 모든 것을 탐색하고자 한다. 나는 이윤기, 성석제, 정민, 시오노 나나미, 무라카미 하루키, 움베르트 에코, 빌 브라이슨 등의 책을 그렇게 읽게 되었다.
독서의 이유? 그런 건 없다.
그냥 재미있으니까, 즐거우니까 그래서 책을 읽는 거다. 킬킬대면서 읽다가, 짐짓 심각하게 읽다가, 때로는 나이에 걸맞지 않게 눈물을 찔끔대면서 읽는 즐거움에 특별한 이유가 있을 리 없지 않나. 의무감에서 하는 독서는 독서라 할 수 없다. 마음에 드는 책을 만나면 그냥 앉은 자리에서 해치우는 편이다. 불면에 대한 아쉬움과 피로보다는 책을 읽은 희열이 훨씬 더 큰데 어찌하랴.
좋은 건축이란 인간에 대한 올바른 이해에서 시작
미국의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말처럼 건축은 모든 예술의 기본이 되는 모태예술이며 모든 문명의 영혼이다. 학생 여러분들이 미술이나 음악에 갖는 관심만큼 건축에 관심을 가져주면 참 좋겠다. 그렇다고 무작정 작심하고 어려운 건축 서적을 읽는 것은 권하고 싶을뿐더러 바람직하지도 않다. 그래서 먼저 우리나라에서 비교적 인기가 덜 한 분야인 여행 분야의 책에 재미를 붙이기를 권한다. 조너던 레이번의 여행기는 얼마나 날카로우며 빌 브라이슨의 여행기는 또 얼마나 유쾌한가. 문명세계로의 여행은 필연적으로 건축에 대한 여행이기 마련이다. 이국적인 문화, 문명답사기에서 점차 과거의 건축, 현대의 건축으로 관심을 심화하는 게 좋은 독서의 방법이다. 결국 건축에 대한 이해는 인간의 문화, 문명에 대한 이해이며 궁극적으로 인간에 대한 이해이다.
젊음의 시간을 독서로 채워나가세요
건축대학 신입생들과 만나는 첫 수업에 나는 늘 이야기한다. “얘들아 제발 책 좀 읽으렴!” 대학생이 된 여러분들의 우선순위 목록에서도 책이 첫째였으면 좋겠다. 건축을 전공하는 학생들은 문학, 역사, 철학 등 인문학을 중심으로 예술, 자연과학, 사회과학 등 다양하게 책을 읽기 바란다. ‘문자향 서권기(文字香 書卷氣)’라는 말이 있듯이 좋은 건축을 위해서는 역사 문자의 향기와 서책의 기운이 더해져야한다. 대학 시절의 그나마 시간이 비교적 자유로우며 지식인으로서 첫발을 내딛는 중요한 시기이므로 독서가 가장 중요한 대학생의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동양의 고전 건축서적들을 온전히 읽는 그날을 기대하며
한문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다보니 집안 조상들이 남기신 문집조차 읽지 못하는 까막눈의 비애를 느껴왔다. 시간이 나는 대로 한문으로 된 서적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사실 한계를 많이 느낀다. 한글이나 영문으로 쓰인 책만큼이나 한문으로 쓰인 서적을 온전히 이해하며 읽는 날을 고대한다. 그래서 현재는 한문에 대한 체계적인 공부를 하고 있다. 훗날 언젠가 고공기나 영조법식과 같은 동양의 고전 건축서적들을 완벽히 읽을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을 마음 한편에 지닌 채…….
중국 남북조 시대 유의경이 쓴, 후한에서 동진에 이르는 시기의 수많은 명사들의 언행과 일화 모음집이다. 당시의 중국의 정치, 역사, 예술, 학문 등 모든 방면에 걸쳐 인간들의 생생한 삶의 모습이 간결한 글 속에 담겨있다. 문학작품으로서도 그 가치가 높으며 현대를 살아가는 오늘날의 우리에게 전혀 빛바래지 않은 촌철살인의 교훈을 준다. 1500년전의 삶의 모습이 현재의 삶의 모습과 전혀 다르지 않음을 깨닫게 하는 책이다.
서기 2세기부터 15세기 콘스탄티노플의 함락에 이르기까지 로마의 흥망성쇠를 다룬 대하 역사책이다. 하나의 문학작품으로 읽기에도 탁월한 책이다. 로마 역사에 대한 서술이기 이전에 인간에 대한 심오하고도 치밀하며 장엄한 서술이라고 말할 수 있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이야기”와 비교해보며 읽어도 좋을 것이다.
백 년 동안의 고독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 박수연 ㅣ 혜원출판사 ㅣ 2007 | 성곡도서관 링크
콜롬비아의 소설과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작품으로 마콘도의 역사와 이 마을을 세운 부엔디아 가족의 5대에 걸친 백 년 동안의 이야기이다. 라틴아메리카의 역사와 정체성뿐만 아니라 인간 존재의 본질적 의미를 마술적 리얼리즘이라는 독특한 방법으로 서술한다. 같은 라틴 아메리카 작가 보르헤스의 환상문학과 비교하면서 함께 읽어도 좋겠다.
실크로드와 고대문명교류사의 전문가 아랍인 무함마드 깐수 교수가 북한공작원 정수일이라니! 90년대 우리나라 지성계를 깜짝 놀라게 한 이 사건의 주인공 정수일 교수가 아내에게 보낸 옥중서신을 모아 낸 책이다. 학자로서의 통찰력과 사색과 더불어 한 인간으로서 숨김없는 내면의 감정이 잘 담겨있다. 진지한 삶의 자세와 지식인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며 읽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