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서재는 준비와 생산을 위한 공간입니다. 다시 말하면 투입과 산출의 공간입니다. 우리가 공장에서 무엇을 생산해내듯이 서재에서 저서나 논문을 쓰기 위한 생산을 위한 공간이고 그런 준비를 위한 공간입니다. 이 공간을 잘 활용하는 방법은 결국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생각해내는 투입과 책을 쓰고 좋은 강의안을 만드는 산출을 극대화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서재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라 생각합니다.
‘교양인이 읽어야 될 필독서 100권’으로 시작한 책읽기
독서하는 습관은 중학교 때부터 꾸준히 가져왔어요. 하지만 따로 독서지도를 받거나 그러지는 못했죠. 그러다가 이제 대학에 들어가니 학보사에서 ‘교양인이 읽어야 될 필독서 100권’을 선정해서 신입생들에게 나눠주더라고요. 그 때만 해도 책읽기를 좋아해서 ‘100권 다 읽지는 못하더라도 비슷하게 읽어야 겠다’고 생각했어요. 실제로 군 입대 전까지 상당부분을 읽었던 것 같아요. 제일 기억에 남는 책은 <카르마조프가의 형제들>입니다. 3형제가 나오는데요. 맏이는 쾌락주의 자이고 둘째는 상당히 이질적인 사람 셋째는 사랑이 충만한 사람입니다. 서로 다른 인간의 군상들을 상징하고 있죠. 제가 살아오는데 인간이 되고 궁리를 해볼 수 있는 토양을 확보하게 해줬습니다. 그 책을 지금도 이렇게 보관하고 있습니다.
불가능의 영역을 탐하지 말고 가능의 극한을 취하라
대학교 1학년 때 읽었던 루이제 린저라는 독일작가가 쓴 <생의 한가운데>라든지 <잔잔한 가슴에 파문이 일 때>책들이 기억에 남습니다. 그 중에서도 <생의 한가운데>에서 여주인공이 “나는 살려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사는 것이다”란 말을 남겼어요. 전체 맥락으로 봐서 상당히 감명 깊었습니다. 또 셰익스피어의 희곡 중에서 오셀로를 보면 “오 나의 위대한 영혼이여 불가능의 영역을 탐하지 말고 가능의 극한을 취하라”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이아고의 독백으로 많이 알려졌죠. 그런 구절들이 20대 제 자아를 생각해보게 했습니다. 그래서 항상 기억하고 있습니다.
<정의란 무엇인가> 그리고 <전쟁의 기술>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역시 가치관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무엇이 옳고 그르다 무엇이 정의로운가에 대한 판단에 대해서 학생들과 이야기 해보고 싶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정의란 무엇인가> 그리고 <전쟁의 기술>이란 두 책을 읽고 정의에 대한 여러 가지 관점에 대해 토론해보고 싶습니다. 두 책은 연관이 있습니다. 고대로부터 이어진 수많은 전쟁의 결과가 요약해서 보여 지는 것이 현재기업경영입니다. 사실은 전쟁인데 과거와 같이 총칼로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육체적인 생명을 뺏는 전쟁은 아니지만 기업만의 경쟁은 다분히 그런 요소들이 녹아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인간을 이용해서 목표를 달성하려는 부분에서 정의란 무엇인가를 토론해보고 싶습니다. 이런 부분들이 학생들이 사회에 진출했을 때 방향성을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단서만 찾아내려 읽지 말자
우리 세대는 책을 확실히 많이 읽었던 것 같아요. 그건 우리 세대가 더 건전하고 성실해서가 아니라 그 때는 지식을 획득하는 매체가 주로 서적뿐이었기 때문이에요. 지금은 과거보다 책을 안 볼지 몰라도 다양한 매체를 통해서 접하는 정보의 양 자체는 과거에 비해 더 많다고 봅니다. 그럼에도 책을 읽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책은 보존성이 중요하다고 보는데요. 제가 73년에 샀던 도스토예프스키 책을 지금까지 갖고 있는 것이 그 이유입니다. 그 당시에 메모해놓고 상념들을 적어놓은 것들을 보면서 과거 기억도 나고 내가 대학생 때는 이런 생각을 했구나 하는 것을 느끼며 혼자 흐뭇해합니다.
앙드레지드라는 작가가 ‘인간은 9개월 만에 인간이 되는 것이 아니고 태어나서 60년 만에 인간이 된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사실 우리는 계속 성숙해져야 하는 그리고 인간다워져야 하는 과정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도움을 얻기 위해서는 독서를 통한 생각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책을 선택할 때 당장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는 책보다는 좋은 시, 소설, 역사책을 고르는 것이 경쟁력이 되고 자신이 될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소설은 인간의 상상력을 키우고 어떤 사상책보다 영향이 크다고 봅니다. 특히 고전 소설들을 읽어보면 ‘내가 아닌 다른 시대 사람들’을 통해 간접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단서만 찾아내려 읽지 말고 정서적으로나 감수성을 기르는 독서습관을 가지는 것이 필요합니다.
작가 이문열과의 만남
저는 좋아하는 국내 작가들의 신작이 나오면 그걸 주로 읽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작가는 이문열씨와 조정래씨입니다. 두 작가는 가치관이 상당히 다릅니다. 15년 전쯤 제가 학생처장을 할 당시 목요특강에 이문열씨가 초청되셨습니다. 특강이 끝나고 제가 따로 모셔서 한 2시간 정도 얘기를 나눴어요. 처음엔 그 분도 그럴 마음이 없었는데 제가 자기 책을 한 권도 안 빼놓고 읽었다니까 고마우셨는지 문학작품에 대해 묻고 답했던 기억이 나네요. 그 때가 초겨울이었어요. 난로 앞에 앉아 긴 대화를 나눴어요. 눈도 좀 내렸던 것 같고요. 조정래시 같은 경우에는 워낙 <태백산맥>과 같은 책이 대작이고요. 또 이문구씨 소설도 재밌어요. 서민들의 생활을 엿볼 수 있어 좋고요. 그 다음에는 추리소설을 좋아합니다. 추리소설 같은 경우에는 지식을 얻기 보다는 제 나름대로의 여가죠.
73년 8월 8일 고난과 구차 속에서도 이렇게…….
전 항상 책을 사서 봅니다. 내 책이라고 첫 표지에 항상 사인을 하고 그 다음에 한 줄씩 써놓습니다. 예전에 쓴걸 보면, “73년 8월 8일 고난과 구차 속에서도 이렇게…….” 제가 책 살 때 기분에 되게 안 좋았던 모양이에요. 이렇게 읽다가 얼마든지 밑줄도 긋고 메모도 해놓습니다. 연구실에서는 전공과 관련된 책을 많이 읽고요. 소설이나 그 외 책은 주로 집에서 읽습니다. 그 동안에 모아 둔 책은 집이 좁아서 아이들 방에도 넣어두고 고향에 계신 어머니 댁에도 있고요. 큰 방이 하나 생기면 다 모아둘 생각입니다.
짐을 가벼이 지려 하지 말고 어깨를 더 넓혀라
제가 종강시간에 꼭 쓰는 말인데요. “짐을 가벼이 지려 하지 말고 어깨를 더 넓혀라” 제 강의를 듣는 모든 학생들에게 꼭 해주는 말입니다. 20대 때는 이런 적극적인 사고가 있어야 겠죠. 편하게 살려하거나 짐을 남에게 떠맡기는 그런 자세보다는 자기 능력을 더 키우고 자신의 짐은 물론이고 능력이 모자란 사람의 짐도 대신 들어주는 가치관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물리적으로 생명을 받은 어머니 뱃속에서 9개월이면 태어나지만 실제 인간이 되는 데는 60년이 걸린다고 했죠. 그 말이 맞아요. ‘이 정도면 됐겠지’라는 생각은 말고 인간이 되는데 60년이 걸린다 생각하고 자신을 좀 더 완성된 상태로 만들어 가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독서는 그런 인간다운 모습을 만드는데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 생각합니다.
또 욕심이 필요합니다. 더 키우려는 욕심 그러나 이것저것 다 가지려고 하면 곤란하죠. 야심이라는 말도 있죠. 10가지 중에서 10가지를 다 챙기려하는 것은 욕심이고 10가지 중에서 9가지를 버릴 수 있으면 그건 야심입니다. 진짜 원하는 꿈이든 사랑이든 자신이 가치를 부여한 한 가지를 추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 그것을 위해 버릴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죠. 그런 사람들이 진정한 자존심이 있고 용기를 갖고 있는 것입니다.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도스토예프스키 저, 김연경 역 | 민음사 | 2007년 | 성곡도서관 링크
이 책은 도스토예프스키의 대표작 중에 하나인데 처음부터 끝까지 대화체로 되어 있습니다. 책에는 아버지와 3명의 아들이 나옵니다. 이들이 나누는 대화에 각각 주인공들이 모습이 담겨 우리 인간들의 전형적인 모습들을 상징합니다. 형제들 간의 갈등, 반목과 용서들이 이 책에 담겨있습니다. 직접경험하지 못하더라도 인간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매우 좋은 책이라 생각합니다.
중국의 역사는 사기를 먼저 이야기 하죠. 이 책은 사기 안에 잇는 사기열전입니다. 사기는 역사별로 쓴 것이고 사기열전은 사기에 나오는 주요 인물들만 다룬 것입니다. 주나라 말기에 점차 권력이 약해지면서 각 지역의 제후들이 들고 일어나요. 반란은 일으켰지만 황제를 모시려했다. 전국시대는 한 단계 더 나아가 반란을 일으키죠. 춘추전국시대의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꼭 한번 읽어볼 만합니다.
1520년대부터 오스만트루크 황제가 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를 점령합니다. 동로마 기독교세력과 이슬람세력이 본격적으로 지중해를 놓고 60년간 전쟁을 하게 됩니다. 유럽 역사상 가장 치열하고 혼돈스러운 전쟁입니다. 이 전쟁에서 나온 유적들이 지금도 다 있어요. 몰타섬, 크레타섬이 대표적이죠. 또 터키 바로 밑에 있는 키프로스의 키프로스 사태도 살펴 볼 수 있어요. 이 책을 읽고 유럽 지중해연안을 이야기해 봤으면 합니다.
전쟁의 기술
로버트 그린 저, 이수경, 안진환 역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 성곡도서관 링크
로버트 그린이라고 하는 저널리스트 출신 작가에요.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전쟁을 세부적으로 말하고 있고요. 인류의 자양분이 될 수 있었던 전쟁에 대해서 그들의 전략을 요약해 놓은 책입니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작가의 방대한 지식에 혀를 내둘렀던 그런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