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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젊은 감각 세계 디자인 쇼에 스며들다
생긴 건 꼭 ‘뒤주 + 콘솔’이다. 그런데 투명하다. 투명 아크릴 사이에 물이 들어있다. 아크릴 판을 꾹 누르면 물감이 이리저리 흐른다. “수묵 담채에서 먹이 스르르 번지는 느낌을 가구에 옮겨보고 싶었어요.” 국민대 실내디자인학과 4학년 이순항씨의 설명. 이씨가 같은 과 친구 김명씨와 만든 이 작품은 ‘컬러풀 컬러리스’란 제목을 달고 세계 최고의 가구 박람회가 열리던 밀라노의 전시장에 등장했다.

올해로 46회를 맞은 이탈리아 밀라노 가구박람회(Salone Internazionale del Mobile·4월 18~23일)의 본 전시는 밀라노 도심 북서쪽 ‘로 페로’ 지역의 ‘피에라 밀라노’에서 열렸다. 유명 가구업체들이 앞으로 유행을 주도하고 수많은 카피를 만들어낼 최신 스타일을 제안하는 행사. 그런데 밀라노 가구 박람회는 이 메인 전시가 전부가 아니다. 국제 디자인계에서 화제가 되는 작품은 밀라노 도심 남서쪽 ‘조나 토르토나(Zona Tortona)’에 등장한다. 밀라노 가구 박람회의 본 전시가 정장 차림 바이어들이 몰리는 상업적인 공간이라면, 조나 토르토나 쪽은 디자인을 좀 더 예술적으로 접근하는 행사장. 디자이너와 디자인팬들이 몰려 북적거린다.

조나 토르토나의 주요 전시관 중 하나인 ‘수퍼스튜디오 13’ 한쪽에서 열린 ‘그게 디자인!(That’s Design!)’ 전시는 덴마크 로열 아카데미를 비롯, 전세계 21개국 디자인 학교들이 참석한 행사. 한국에서는 국민대와 건국대가 참여했다. 특히 국민대는 중국 칭화대, 일본 무사시노 미술대학과 연합, ‘ODCD(동양문화디자인 연구소·Oriental Domestic Culture & Design)’란 이름으로 참가했다. 세 학교가 뭉쳐 2005년부터 본격 활동을 시작한 ODCD(www.odcd.org)는 작년에는 ‘파티션’, 올해는 ‘주거공간에서의 물’을 주제로 삼아 공동 연구를 펼치고 있다. 이번에 ‘밀라노의 소호’라는 조나 토르토나에서 전시를 열기 전, 지난 3월에는 중국 ‘베이징의 소호’라는 따산즈에서 공동 전시를 마련했다.

국민대 실내디자인학과 최경란 교수는 “세계적으로 동양 디자인이 난리라는데, 서양 디자인의 중심 무대인 밀라노에서 3개국의 동양 디자인을 선보이고자 했다”고 말했다.

① 국민대 출품작 '컬러풀 컬러리스' ODCD사진
② 밀라노 '조나 트로토나'에서 열린 전시회에 참가한 최경란 교수와 국민대 학생들. 사진=프리랜서 최석훈
③ '밀라노 가구 박람회'가 열린 '피에라 밀라노' 전시장에 들어선 가구회사별 부스마다 차려진 세련된 바(bar)도 볼거리.


또 “학생들에게 세계적인 디자인 업체와 디자이너들의 네트워킹·마케팅 현장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탈리아 디자인계의 원로 알레산드로 멘디니가 ODCD 고문을 맡고 있으며, 이번 밀라노 전시는 일본의 욕실업체 ‘이낙스(INAX)’가 후원했다.

국민대 실내디자인학과 4학년생 30명이 선보인 작품은 실제 관람객들이 보고 만질 수 있는 모델 7점에 영상물까지 더해 총 30여점. 나무가 우거지고 물이 찰랑대는 호숫가를 연상시키는 싱크대 ‘떠 있는 섬’을 발표한 김경실씨는 “전시장이 보통 밤 10시, 파티가 있는 날은 자정까지 문을 여는 밀라노에서 진정한 디자인 쇼를 본 느낌”이라고 말했다.


④ '조니 토르토나' 지역에 들어선 모자이크 회사 '비사짜' 전시장. 타일을 붙여 만든 초대형 피노키오가 등장했다.


트렌드? 형태는 단순하게 기술은 첨단


⑤ '피에라 밀라노'전시장의 '카르텔'사 부스. 플라스틱 가구로 유명한 회사답게 화려한 플라스틱 의자의 향연을 펼쳤다.
⑥ 유명 건축가 자하 하디드의 소파가 등장한 밀라노 시냐의 B&B매장.
‘트렌드가 뭐냐’라고 묻는다면 한 마디로 “더욱 커졌다, 더욱 고급스러워졌다, 형태는 여전히 미니멀이 대세고, 컬러는 블랙.” 그런데 총 2100여개 업체가 참가, 4월 18~23일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국제가구박람회(Salone Internazionale del Mobile)’를 돌아본 국민대 실내디자인학과 김개천 교수는 “이제는 특별한 형태나 색상, 재료가 주목 받는 시대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번에 출품된 가구들은 대부분 심플하고, 가벼워 보이고, 부드럽고, ‘펀’한 요소를 갖추고 있지요. 그러면서도 제대로 기능할 수 있도록 최첨단 소재와 기술을 썼고요.” 몇 년째 욕조든 장식장이든 간에 손잡이나 각종 작동 버튼 등 자질구레한 것들은 몽땅 숨어버리는 추세. 형태는 더욱 단순해 진다. TV는 벽 속으로 스며들고 싱크대도 더욱 미니멀해 진다. 국민대 실내디자인학과 최경란 교수는 “형태는 더욱 단순하게, ‘스탠다드’로 나아가지만, 조명 등 과거 ‘침대와 소파의 액세서리’ 정도로만 취급되던 부속들은 더욱 화려해지고 요란해진다”고 설명했다. 가구의 형태와 컬러가 단순해지면서, 이제 업체들은 이미지에 매달리기 보다는 소재와 기술, 질감 싸움을 벌이고 있다.


‘몰테니’ 등 가구업체들이 일제히 선보인 붙박이장의 슬라이딩 문짝과 식탁 사이즈는 하나같이 크고, 길고, 거대하다. 그리고 그 큰 사이즈를 무리 없이 유지하기 위해 최고의 기술을 동원한다. 이런 초대형 사이즈의 가구는 아무래도 일반 가정 보다는 중국, 러시아 등의 신흥 부자들을 고객으로 모신 ‘프로젝트’ 주거 단지 ‘납품용’으로 보이기도 한다. 확실히 5~6년 전에 비해 가구 박람회 기간 중 밀라노 거리는 중국 바이어와 시찰단으로 넘쳐 났다. 중국이야 말로 유럽 가구 업계의 화두. 유럽 가구 공장 문을 닫게 만드는 ‘메이드 인 차이나’의 무서운 기세 때문이다. ‘카시나’ ‘알리아스’ ‘카펠리니’를 합병해 버린 이탈리아 업체 ‘폴트로나 프라우’는 조만간 중국에서 제품 생산을 시작한다.

신제품 부스가 빽빽하게 들어찬 박람회 메인 전시장에 비해 아티스트와 디자인 그룹을 앞세운 ‘비엔날레형’ 전시들이 이어진 ‘조나 토르토나’ 지역에서는 이탈리아 모자이크 업체 ‘비사짜’와 네덜란드의 유명 디자이너 마르셀 반더스의 전시 등이 주목 받았다. ‘비사짜’의 부스에는 이 업체의 타일로 제작된 초대형 피노키오(스페인의 하이메 아욘)와 사람만한 크기의 스푼·그릇 등 식기세트(네덜란드 디자인팀 ‘스튜디오 욥’)가 등장, 최고의 ‘포토존’으로 꼽히기도 했다. 마르셀 반더스는 자신이 이끄는 브랜드 ‘무이’의 쇼룸과는 별도로 전시회를 열었다. 레이스로 떠 놓은 듯한 섬세한 의자, 델프트 도자기를 재해석한 거대한 종 등 디자인 작품들이 등장한 전시장 한 쪽에는 관객이 그가 ‘카르텔’사를 위해 디자인한 경쾌한 플라스틱 의자 위에 앉아 에스프레소를 홀짝이며 쉬었다 갈 수 있는 카페도 차려졌다.

출처 : 조선일보 입력 2007.04.25 18:49
원문보기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7/04/25/200704250091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