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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속의 국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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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짝 부수고도 세번 말바꿔… 골퍼가 아닌 ‘스윙머신’ 만든 건 아닐까[최우열의 네버 업-네버 인] / 최우열(스포츠교육학과) 겸임교수

■ 최우열의 네버 업-네버 인 - 부서진 라커와 스포츠 인성

김주형, 사과·보상 약속했지만
다음날 영어 사과문에서 ‘변명’
방송에 출연해서는 “문이 문제”
비매너 행동 여러차례 구설수

김비오·윤이나 등 도덕적 일탈
등한시한 인성교육 돌아볼 때

 


“스포츠는 인성을 만들지 않는다. 다만 드러낼 뿐이다.” UCLA 농구팀 감독으로 미국대학스포츠협회(NCAA) 역대 최다인 10회 우승을 이끈 명장이자 미국민에게 가장 존경받는 스포츠지도자였던 존 우든(1910∼2010)의 말이다.

 

우리는 보통 바람직한 인성과 사회성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란 기대로 어린 자녀에게 스포츠를 배우게 한다. 하지만 관련 연구를 보면 스포츠가 반드시 인성과 사회성 발달에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현실은 오히려 우든의 말처럼 반대인 경우가 더 많다. 모두 지나친 경쟁과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기기만 하면 된다는 승리 지상주의 문화 탓이다.

 

최근 국내에서 개최된 한 국제적인 골프대회에서 한국의 김주형 선수가 대회 연장전에 패한 직후 라커의 문짝을 부순 것으로 밝혀져 논란이 되고 있다. 사건 보도 직후 당사자인 김주형은 한 언론과 전화 인터뷰를 통해 우승 기회를 살리지 못한 자신에게 화가 나 문을 세게 열다 한쪽 문이 떨어졌다며 사과와 함께 수리 비용 등을 보상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다음 날 김주형은 다시 개인 SNS에 영어로 된 사과문을 올리며 이 같은 보도는 억측이자 잘못된 것으로 자신은 문짝을 파손할 의도가 전혀 없었다며 말을 바꿨다. 급기야 이튿날 한 방송에 직접 출연한 김주형은 문이 원래 문제가 있었고, 잘 안 열려서 좀 세게 당기다 고장 나 안전을 위해 문을 옆에 빼놓은 것뿐이었다고 해명했다. 불과 사흘 동안 세 번이나 말이 바뀐 것이다.

 

물론 사건의 진실은 선수 본인만이 알 것이다. 하지만 대회가 열린 골프장이 회원권 시세만 29억 원이 넘는 국내 최고의 회원제 골프장으로 일반 골프장과 달리 원목을 사용해 라커 문짝이 훨씬 튼튼할뿐더러 경첩도 2개가 아닌 3개나 달렸다는 점, 직원들이 매일 모든 라커를 손수 열어서 정비하고 문제가 있으면 곧바로 수리한다는 점, 더구나 사건 발생 직후 골프장 측에서 강한 힘에 의해 문의 경첩이 떨어졌다고 직접 밝힌 점 등을 미루어 보건대 김주형의 해명은 석연치 않아 보인다.

 

본인은 충분히 해명했고 그래서 이미 마무리된 일이라고 여길지 모르겠지만, 일련의 과정을 지켜본 많은 골프팬의 마음은 부서진 라커 문짝만큼이나 상처받고 너덜너덜해졌다.

 

김주형은 지난 8월 미국프로골프(PGA)투어 플레이오프 1차전 마지막 날 퍼트에 실패한 뒤 퍼터로 그린을 내리쳐 훼손한 뒤 수리도 하지 않은 채 떠나고, 프레지던츠컵에서는 버디를 기록한 뒤 과한 세리머니를 펼치다 공을 늦게 꺼내거나 상대 팀 선수가 버디 퍼트를 할 때 다음 홀로 먼저 이동하는 비매너 행동으로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김주형 말고도 한국 골프계는 김비오, 윤이나 등 일부 스타 선수의 도덕적 일탈로 사회적 물의는 물론 전체 스포츠계 이미지에 먹칠한 경험이 있다. 이번 일을 계기로 골프 지도자와 선수 부모, 그리고 관련 협회는 그동안 기본적인 스포츠퍼슨십과 인성 교육은 등한시한 채 오로지 연습과 승리만을 강조하며 공만 때리는 스윙머신만을 양산해온 건 아닌지 되돌아볼 때다.

 

올해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월드시리즈 우승팀 LA다저스의 오타니 쇼헤이는 비록 이방인이지만 투타를 겸하는 뛰어난 야구 실력과 성실하고 모범적인 태도로 미국인들에게 많은 사랑과 존경을 한 몸에 받는 선수다. 고교 시절 이미 전국적인 인기 선수였던 오타니에게 감독은 겸손을 가르치기 위해 3년 내내 다른 투수들과 함께 합숙소 화장실 청소를 하게 했다. 감독의 뜻을 이해한 오타니는 묵묵히 이를 따랐다고 한다. 메이저리그 진출 이후에는 경기장 곳곳에 떨어진 쓰레기를 직접 주워 버리는 장면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다행히 한국프로골프협회(KPGA)는 상벌위원회를 개최해 김주형에게 경고 처분을 내렸다. 징계 수위를 놓고 이견이 있긴 하지만, 자신의 분노 행동에 의한 잘못으로 선수가 인정했고 협회가 이를 공식 기록으로 남긴 것은 한국 골프계의 미래와 선수 본인의 장래를 위해서 의미가 있다고 본다. 스포츠심리학 박사

 

국민대 스포츠산업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