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서재란 소나무의 눈이다
엉뚱하게도 저는 제 서재를 ‘소나무의 눈 송안당 松眼堂’이라 얘기하고 싶습니다. 소나무는 눈은 물론, 입도 없고 귀도 없지만 책들은 나에게 있어 소나무가 가지고 있는 상징적 의미인 절제, 지조, 기개, 강인한 생명력들을 끊임없이 불어넣어주는 근원이 되기 때문입니다. 소나무의 눈처럼, 서재는 끊임없이 지켜보며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들을 배우고 익히고 헤아려서 뭔가 쓸모가 있는 학문을 하게끔 채찍질하는 공간입니다.
어두운 길목의 길잡이로서의 도서
저는 1970년에 대학을 입학했습니다. 우리가 대학을 다닐 때는 사회적으로 암울했던 시기였습니다. 그런 시대적 상황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도서관에서 책을 많이 읽었을 것입니다. 저 또한 또래 학생들 못지않게 책을 아주 좋아했습니다. 당시에 ‘사상계’라는 잡지나 여러 문예지가 나왔습니다. 학교 도서관에서 늦게까지 잡지를 찾아 당시 연재되던 많은 소설들을 읽었습니다. 오늘의 내가 되는데 그 책들이 정신의 자양분이 되어서, 똑같은 현상을 다르게 해석하려하고 다르게 설명해 사람들에게 보여주려 하는 관점들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교양도서가 산림학의 밑거름이 되다
대학시절 저는 막연히 자연과학과 관련된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 분야에 대한 공부를 집중적으로 더 열심히 했다면 어쩌면 지금과는 더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문학, 사회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교양도서를 많이 읽었기 때문에 전공자의 눈으로 생각할 수 없는 다른 시각에서 전공을 풀 수 있었습니다. 산림학자가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을 인문학과 결합시켜 숲에 관련된 새로운 해석을 내놓고 숲을 문화적인 관점에서 볼 수 있었던 밑거름은 대학 때 전공 외의 서적을 많이 읽었던 것에 있습니다. 특히 대학 시절 전혀 이질적인 분야를 많이 접했습니다. 임학과 학생이 이해하기 어려운 철학과 미학 수업을 들었습니다. 그런 지식들이 지금의 저에게는 자양분이 되었습니다.
이후 개발 시대를 지나 환경에 대한 것들이 중요 현안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환경에 대한 논문들을 읽다보니 관련 지식에 대한 식견이 생겼고 그런 식견을 키울 수 있었던 것도 교양 도서들 덕분이었습니다. 그 시대의 정신을 반영하는 교양도서를 읽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책을 통해 보는 산림학의 길
책 읽기를 통해서 다른 나라 사람들이 자신의 나라의 자연을 얼마나 아름답고 생생하게, 얼마나 쉽게 전달하고 있는지를 접하며 책을 통해 나도 이렇게 사람들에게 감동, 감명을 줄 수 있는 책을 써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 결실로 몇 몇 권의 책을 출판할 계기도 되었습니다. 20여 년 전에 우리사회에선 없던 이야기를 숲을 이러한 쪽으로도 보라고 얘기했기 때문에 오늘날 그것이 법으로 제정되어 통용되고 있습니다. 거기에 안주하고 있다면 발전이 없는 거죠. 전영우 선배, 교수, 혹은 필자 전영우의 생각을 뛰어넘는 새로운 생각들이 많이 나와 주었으면 합니다. 학문은 그래야만 발전할 수 있습니다. 어떤 면을 보면 아직 도 산림학에 미개척 분야가 많습니다. 누구든지 손을 대면 새로운 영역의 전문성, 대중성을 확보하고 국민들의 눈높이도 확보할 수 있을 분야들을 많은 이들이 무시하고 있습니다. 그런 분야에 대해 지난 몇 년간 준비하면서 새롭게 써보자고 생각했고 그중 하나가 사찰 주변의 숲 사찰이 갖고 있는 숲 ‘사찰림’입니다.
왜 우리는 독서를 해야 하는가
요즘 같은 세태에 학생들은 책을 잘 읽지 않습니다. 학생들에게 이런 얘기를 해주고 싶습니다. 엊그제 교보 문고 앞을 지나가다가 멋진 구절을 보았습니다.
‘지금의 당신은 당신이 있는 장소, 당신이 만나는 사람, 당신이 읽는 책을 통해 당신이 누구인지 알 수 있다.’
시간 죽이는 책을 쥐고 있는 당신인가, 혹은 조금 호흡이 긴 전집류의 장길산, 토지, 태백산맥을 떼겠다고 마음먹은 당신인가. 바라보는 사람에 따라 그 사람을 생각하는 것도 달라질 것이고 그 이후의 그 사람의 30대, 40대, 50대의 삶도 달라질 거라 믿습니다.
오늘처럼 영상매체가 발달한 세대는 현란한 것이 최고라 생각하지만 그에 반해 책읽기는 눈에 띄지도 않는 노력과 시간을 요하고 어쩌면 집중과 희생까지도 요구하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지금 투자하지 않으면 직장, 사회에 나가 책을 학창시절만큼 많이 읽어내지 못할 것입니다. 사회는 점점 바빠질 것이고 가만히 놔두지 않는 디지털 문명이 지배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학생인 때에 인간으로서의 삶에 여유를 갖추기 위해서, 한 템포 늦추며 삶을 계획하고 구성하고 준비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의 경험을 읽어내는 독서가 필요합니다.
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 생활
하루에도 수십 권의 수백 권의 책이 발간되는데 일주일 나온 책 중 모든 책을 알기란 쉽지 않습니다. 전공에 필요한 서적 같으면 여러 네트워크가 있어서 관련 서적을 찾을 수 있지만 일반 서적들은 그런 방법으로 책을 보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여러 개의 신문에 나오는 서평란을 유심히 살펴 필요한 책을 사서 보거나 빌려보기도 합니다.
꼭 읽어야할 책은 밤을 새서라도 집중적으로 봅니다. 그리고 자동차 대신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 시간동안 책을 읽습니다. 지하철을 타면 일주일에 1~2권 읽는 것이 어렵지 않습니다. 저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아침형 인간이라 머리 위에 책을 두고 새벽에 읽어나 읽기도 합니다.
나에게 맞는 책을 고르기 위한 노력
우리는 누구나 좋아하는 음식이나 음악이 있습니다. 자신이 즐겨보는 장르의 영화도 있습니다. 음식을 많이 먹어보고, 음악을 많이 들어보고, 여러 영화를 보면서 나의 취향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독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읽어보지 않고 ‘이것은 너무 어렵고, 고루하고 너무 편향되었다.’ 고 섣불리 평가를 하기보다는 많이 읽어보다 보면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의 책들을 선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시대의 대학생들에게 고함
대부분의 필자는 책을 허투루 쓰지 않습니다. 어쩌면 자신의 모든 열정을 다 바쳐 책을 만듭니다. 어떤 필자, 어떤 전문가의 온 정성이 다 담긴 것이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린 이것도 저것도 해보고 싶고 기웃거리는 게 많지만 다 해볼 수가 없습니다. 그것을 충족해 주는 것이 독서라고 생각합니다.
우선 많이 섭렵해보면서 나와 잘 맞는 부분에 따라 영역을 넓혀도 보고 좁혀도 보면 어느 틈에 그 분야의 마니아가 되고, 그것이 확장되고 심화되면 본인 자신도 남 못지않은 지적 전문성을 갖춘 전문가가 될 수 있습니다. 좋아하는 것, 잘 할 수 있는 것 그 분야에 대해 10년만 책을 읽으면 어느 틈에 우리나라에서 제일 가는 전문가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학생들은 10년을 아주 긴 시간으로 느끼고 그 일을 아주 어려운 일로 여기는데 10년은 그리 긴 시간이 아닙니다. 그렇게 좋아하는 일에 열중하다보면 자기의 꿈을 이뤄낼 수 있다는 것을 꼭 기억하라고 당부 드리고 싶습니다.
1991년 말에 창간된 격월간 《녹색평론》은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사이의 분열을 치유하고, 공생적 문화가 유지될 수 있는 사회의 재건에 이바지하려는 의도로 발간되는 잡지”라는 발간사의 내용처럼, 물질적 풍요를 위한 경제발전과 무한경쟁이 최고의 덕목인줄 알고 살아온 우리네 삶의 양식이 자연환경을 지키지 못하면 결코 지탱할 수 없는 지속불가능한 삶임을 매월 일깨워주고 환기시켜 주는 책이다. 결코 충족시킬 수 없는 인간의 물질적 욕망을 마음의 풍요로 채울 수 있음을 알려준 책이기에, 또 자발적 가난과 공동체적 삶의 복원이 현대 문명의 대안이 될 수 있음을 끊임없이 환기시켜주는 책이기에 내 인생의 중요한 책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지구상에 존재했던 다양한 문명이 ‘총’과 ‘균’과 ‘쇠’의 활용(제어)여부에 따라 문명발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되었음을 생태지리학, 생태학, 유전학, 병리학, 문화인류학, 언어학 등을 통해서 설득력 있게 밝히고 있다. 이 책은 진화생물학자인 저자가 세계 곳곳의 현장 답사를 통해 각 대륙의 문명이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된 이유로 인종적ㆍ민족적 차이 때문이 아니라, 환경적 요소들 때문이라는 것을 실증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 저술이 특히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자연과학자의 관점에서 어떤 현상을 자연과학자의 시각으로만 해석하기보다 다양한 학문적 영역을 포괄하여 총합적으로 해석하는 학문적 자세였다. 최근 재러드 다이아몬드가 펴낸 <문명의 붕괴>는 과거의 문명이 환경훼손, 무분별한 개발, 약탈, 전쟁 등으로 어떻게 사라지게 되었으며, 오늘날의 문명이 자멸하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우리들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제시하고 있어서 더욱 새롭다.
우리 옛 그림의 아름다움을 구어체로 설명하고 있는 이 책은 옛 사람의 눈으로 옛 사람의 마음을 읽는 법을 쉽게 설명하고 있다. 우리의 소중한 전통 문화, 특히 전통회화로부터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최상의 방법론을 조용한 목소리로 들려주고 있다. 수많은 기법과 복잡한 의미를 숙지하고 있지 않을지라도 이 책을 따라 읽다보면 우리 옛 그림의 독창성과 조상들이 아끼고 즐긴 자연의 아름다움을 스스로 체득할 수 있다. 나는 이 책을 통해서 자연을 보고 읽는 법과 함께 자연을 가슴에 담는 법도 익힐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