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서재는 ‘빈공간’이다
저에게 서재란 ‘빈공간’입니다. 빈공간이란 말은 여러 가지로 해석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먼저 저는 사실 서재가 없어요. 보통 서재라 하면 책만을 위한 공간, 그 안에서 독서가 이루어지는 공간을 뜻하잖아요. 저는 의도적으로 그런 공간을 만들지 않으려고 노력 중에 있습니다. 우리가 책 속에 길이 있다고 하지만 거꾸로 책 자체가 무엇인가에 도달하기 위한 길이죠. 그 길을 지나고 나면 물건이 되어버릴 때가 있어요, 공간도 차지하구요. 전공상 책 자체의 아름다움을 즐기는 책들도 있지만 현대사회에서 많은 책들이 감상하는 책들로 제작되는 경우는 드물어요. 그래서 일상적으로 보는 책들의 경우에는 책의 물리적 존재에 대해 중요성을 못 느끼는 편입니다. 또 한 가지는 자기가 만들어 놓은 서재에 놓일 수 있는 책은 한계가 있는 것 같아요. 스스로 한계를 만들어 놓는 기분이 들어서 언제부턴가 책을 읽고 나면 묶어서 창고에 가져다 놓기도 하고, 누구를 주기도 하고, 서재를 작업을 위한 공간으로 용도를 바꾸기도 해요.
그러나 궁극적으로 진심으로 제가 책들을 사랑하는 이유는 책 속에 담겨져 있는 이야기를 발견하고 만나게 된 이후에 겪게 되는 나의 내적인 변화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서재를 만들지 말자. 비워 버리자 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지표가 되어 준 책
사람은 누구나 어렸을 때부터 영향을 받았던 책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살면서 어느 정도 가치관이 생기고 자기 심지를 만들어 가는 시기가 된 이후에, 한 번 읽고 끝나는 게 아니라 다시 보게 되는 책들이 있어요. 지금도 간간히 필요로 하는 책이 두 권이 있는데. ‘노자’와 ‘탈무드’입니다.
노자를 도덕경이라고도 하는데요, 도덕경을 읽다보면 제가 꿈을 꾸는 것 같아요. 나를 묶고 있는 틀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책입니다. 때로는 처세술도 배울 수 있고, 현대사회에서 제 스스로 규정짓거나 세상을 바라보는 틀을 흔들어 주는 게 필요한 때가 있는데, 그 역할을 해 주는 것이 도덕경이에요. 탈무드도 역시 그러한 이유에서 영향을 주었어요. 탈무드의 말 중에서 지금도 가슴속에 때때로 되새기는 문장이 있는데 ‘진리란 너무 무거운 것이라 젊은이가 아니면 옮길 수 없다’라는 글을 처음 만난 곳이 탈무드입니다. 그 문장에 매료돼서 제가 가끔씩 흔들리거나 제 자신이 위태해보일 때 꺼내어 보기도 하죠.
그러나 모든 책은 완전히 그 책에 기대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결국에는 책을 읽는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가끔씩 나를 점검해보는 역할로 책을 읽고 있습니다.
나만의 책을 읽는 방법
저는 읽기 시작한 책은 반드시 끝내려고 합니다. 읽다보면 예상과 달리 재미가 없거나 너무 어렵거나, 나한테 도움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어도 끝까지 다 읽습니다. 그 이유는 책은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인데, 어떤 이야기든지 끝까지 들어보지 않고 판단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생각에서 끝까지 읽습니다. 그래서 몇 달이 걸려서 끝낸 책도 있어요.
책을 많이 읽으려하지만 시간이 부족해서 책을 못 읽을 때도 있어요. 그래서 시간을 정하지 않고 손닿을 때마다 읽고, 동시에 여러 권을 읽어요. 집에서 읽는 책은 집에 있고, 학교에서 읽는 책은 학교에 있고, 지하철에서 읽는 책은 가방 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한 권에 푹 빠지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데, 예를 들어 푹 빠져야 되겠다 싶으면 집에서 읽는 책만 끝내고 나머지 책을 읽습니다. 저는 저에게 주어진 시간의 한계를 이기는 방법이기 때문에 동시에 읽는 법을 주로 사용합니다.
책을 안 읽는 걸 굉장히 즐기는 시기도 있습니다. 때때로 독서를 통해 얻은 지식을 위험하게 사용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래서 때때로 책이 무서운 거예요. 무슨 말이냐 하면 책에서 얻은 지식을 위험하게 사용하는 때가 있어요. 물론 저도 그런 욕구와 달콤함에 빠지게 되는 때가 있지요. 상대방과의 관계에 있어서 나를 우월성을 드러내는 도구로 사용하려는 욕구가 간간히 생깁니다. 그럴 때는 책을 안 읽어요.
책은 저에게 편한 존재입니다. 많이 읽든 적게 읽든 자기가 가진 지식의 읽음으로써 나에게 어떤 변화가 있는지가 중요한 거지요. 그래서 항상 창조적으로 자기화하려는 노력을 하하고 있습니다.
독서가 주는 즐거움
디지털 네트워크 세상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타인과 나누는 기술이 많이 발달했지요. 그렇다고 해도 이 세상 모든 곳에 가볼 수 없고,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을 수가 없습니다. 삶은 유한하구요, 저도 남겨진 삶이 있으니까요. 책은 유한한 세상에 무한한 세상을 가져다주는 통로입니다. 그래서 저는 책을 읽습니다. 세상을 아는, 세상을 만나는 즐거움. 저는 유한한 삶과 무한한 세상, 그 두 대립점이 만나는 순간이 좋습니다.
도서관을 이용한 독서하기
서재는 소중한 공간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서재가 소중하기 때문에 ‘서재를 없애보자’라는 이야기를 한 거지요. 저는 요즘 ‘책 안사자’ 주의인데요, 학교가 가까워서 도서관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느리게 사는 것도 중요하고, 함께 나누는 삶도 중요한 것 같습니다. 학생들도 도서관을 많이 이용했으면 좋겠습니다.
도서관에 가면 여러분이 원하는 책이 있습니다. 또 여러분이 도서관을 이용하면서 원하는 책이 없을 경우에, 도서관에 요청함으로써 도서관이 더 좋은 양서로 채워지게 됩니다. 컬렉터가 아닌 이상 도서관을 이용해서 책 속의 내용만 간직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집니다. 학생 때는 돈도 많지 않으니 도서관을 많이 이용하세요. 정말 도서관이 지식으로 지혜로 진리로 꽉 찬 공간이 되기 위해서는 여러분이 도서관을 많이 이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창조적인 생각을 위한 독서
독서할 때 사람들마다 마음가짐이 다르잖아요. 보통 창조적이다 하면 새로운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기 마련이죠. 가장 창조적 발상의 원천은 일상생활에요. 일상생활의 하나의 관찰로써 독서를 하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책을 읽을 때 마음가짐입니다.
학생들에게 권하고 싶은 이야기는 독서자체를 창조적 방법으로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예로부터 높은 가치이기 때문에 왠지 책을 많이 읽지 않으면 비교양인인 것 같고, 책을 많이 읽는다는 사실은 스스로 칭찬하며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되죠.
하지만 창조적인 생각은 책에서 오는 것이 아니고, 사유의 결과로 창조적인 생각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은 책에 나오는 내용을 너무 신봉하는 것 같아요. 책이란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고 그것을 통합할 수 있는 능력 속에서 창의력이 나오는 것 같아요. 다독도 중요하지만 책의 내용을 새로운 시각으로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것이 창조의 원천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디자인과 융합, 그리고 통합적 사고
‘많은 책을 읽으면 통합적 사고에 도움이 된다.’ 는 사실은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닌 것 같아요. 무엇을 위해서 우리가 그동안 단절된 영역들을 연결시키느냐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면, 특히 디자인분야에서 있어서는 인간을 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인간을 위하는 것이냐’는 시대별로 지역별로 조금씩 차이가 있지요.
제가 좋아하는 책 중에 ‘인간과 디자인’이란 책이 있어요. 빅터 파파넥이란 디자인 학자이자 인류학자가 쓴 책인데요, 상당히 통합적 관점에서 디자인의 가치를 논하고 있습니다. 디자인이란 것은 상당히 인간중심적인 것. 인간을 중심으로 하되, 인간이 또 지구의 한 일원으로서 행복을 추구해야한다는 다양한 인문학점 관점들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통합에 있어서는 ‘어떤 가치를 추구하느냐.’는 가치가 참 중요한 것 같습니다.
꿈과 끊임없는 도전
저의 꿈은 예술가입니다. 예술이란 것은 ‘그림을 그린다.’라는 그런 것이 아니라, 세상을 조금 다른 방법으로 의식하는 행위인 것 같아요. 예술은 정신활동이고, 그것이 발현된 결과물이 작품이구요. 좋은 작품을 하고 싶고요, 좋은 작품을 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것은 좋은 생각인 것 같습니다.
좋은 생각을 하기 위해서 좋은 책들을 만나고 싶습니다. 우리가 목마르면 물을 마시잖아요. 수도꼭지를 틀어 수돗물을 마실 수도 있고, 차 마셔도 되고, 냇물의 물을 마시기도 하고, 물 마시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요. 책을 읽는 행위는 자기의 갈증을 풀어서 물을 마시는 행위라고 봤을 때, 우물과도 같은 것 같아요. 우물은 물을 마시거나 사용하기 위해서 노력을 많이 해야 해요. 좋은 책을 읽기 위해서는 자기 노력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좋은 책을 찾아보려는 노력도 필요하고요,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자기가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좋은 책으로 다가오지 않습니다. 깨어있는 의식 있는 사람에게 좋은 책이 가까이 갈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책 읽는 행위는 편안한 행위이지만 그 만큼 어려운 행위입니다. 그런 삶을 살고 싶습니다. 책을 많이 읽으면서 좋은 책을 많이 만날 수 있는 행운이 있길 바랍니다.
노자는 도덕경이라고도 많이 불립니다. 저는 노자라는 책을 해설서도 읽어보고 축약본도 읽어보고, 여러 책을 읽어봤습니다. 이 책은 가장 원문에 가깝게 번역을 하고, 특별한 해석을 달지 않은 책입니다. 대부분 도덕경은 내용보다는 역자의 해설을 읽어야 하는 책들이 많지만 이 책은 그런 게 전혀 없어서 이 책을 추천합니다.
무슨 소리인지 잘 몰라도 어쩔 수 없이 노자가 하는 이야기를 봐야 하는 책입니다. 노자의 도덕경을 통해서 때때로는 처세술도 배울 수 있고, 현대사회에서 스스로를 규정짓거나 세상을 바라보는 틀을 흔들어 주는 게 필요한 때가 있는데, 그런 역할을 해 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빅터 파파넥의 이 책에는 디자인의 형태가 어떤지, 색상이 어떤지, 이런 이야기가 전혀 없습니다. 이 책은 상당히 통합적 관점에서 디자인의 가치를 논하고 있습니다. 디자인이란 것은 상당히 인간중심적인 것. 인간을 중심으로 하되, 인간이 또 지구의 한 일원으로서 행복을 추구해야한다는 다양한 인문학점 관점들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30년 정도 된 책이지만 시간을 거슬러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토론의 법칙’이란 책 제목만 보면 지적인 토론 토론을 통해서 어떻게 정의를 추구할 것인가를 다루는 책 같지만 ‘그것이 옳고 그르든 간에 무조건 상대방을 이겨야 하는 칼싸움이다.’라는 풍자적 내용입니다. 토론의 법칙이 30여 가지가 나와 있는데 ‘토론에서 질 것 같으면 진지한 태도로 갑자기 딴소리로 하라. 반론할 게 없으면 무슨 소린지 못 알아 듣겠다고 말한다.’ 등의 재밌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것을 통해 인간이 얼마나 허세와 지적 허영에 빠져있는지 비판하고 있는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