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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CEO토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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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 CEO - (주)제일비엠시 김정현 대표를 만나다 / 법학과 73학번

2010년 '제일과 동행'이라는 장애인 표준 사업장을 설립, 취업 취약계층인 장애인을 고용해 나눔 경영을 실천해 온 동문이 있다. 법학과 73학번 김정현 동문이 그 주인공.  그간 사회봉사의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11월, 우리학교 개교 67주년 기념식에서 동문 공로상을 받았다. '사람이 제일이다'라는 신념으로 자기만의 길을 가고 있는 김정현 동문을 만나봤다. 
 

 
 

푸를 '청' 글월 '문', '청문'의 시절들

인터뷰 날짜와 시간을 미리 정해 놓았는데도 동문을 만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약속한 시간에 도착하고 나서 20여 분을 더 기다린 후에야 얼굴을 마주 볼 수 있었다. 급한 결제를 마무리하고 왔다고 했다. 하지만 인터뷰를 시작한 지 채 5분이 지나지 않아 외부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서둘러 나가야 한다는 연락이 왔다. 4개 사업체를 열정적으로 이끄는 기업의 수장다웠다. 그렇게 겨우 쪼갠 시간을 빌어 인터뷰가 성사됐다. 쉴 새 없이 울리는 카메라 셔터 소리는 날카롭게 시간을 자르는 소리처럼 들렸다. 그런 가운데서도 대화는 사뭇 진지했고 앞에 놓인 찻잔에선 녹차 향이 희미하게 올라왔다.

김정현 동문은 안동의 면 단위 시골에서 태어났다. 한 학년에 한 반이 전부인 작은 초등학교를 다녔다. 모범생이기도 했고 집안의 기대도 받았다. 그래서 안동시의 중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다.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 내내 전교 1,2등을 놓치지 않았다. 하지만 머잖아 인생의 첫 좌절을 맛봐야 했다.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지 못한 것. 당시 일류대로 꼽히는 대학에 진학하는 것을 목표로 했지만 결과는 그렇지 못했다.

국민대 법학과에 진학한 후에도 쉽게 현실을 인정하지 못했다. 짧은 방황의 시절이었다. 법대생이었지만 사법고시를 치를 생각은 하지 않았다. 당시의 사법고시는 1년에 몇 명 뽑지도 않았거니와, 산 속 절에 들어가 2,3년을 오롯이 바쳐야 겨우 합격할 수 있었다. 공부가 인생의 전부가 아니지 않느냐는, 제법 치기어린 패기도 있었다. 김동문은 대학을 무사히 졸업하고 좋은 회사에 입사하는 것이 대학 다닌 보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동문에게 전환점이 될 만한 사건이 일어났다. '청문회'라는 동아리에 가입하게 된 것. '청문회'는 일종의 학술 동아리였다. 선후배들이 모여 사회 철학을 탐구하고 현실에 대해 고민했다. 강당을 빌려 학술토론회를 개최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 했다. 동문은 동아리 활동을 통해 답답한 현실과 젊음의 탈출구를 찾았다. 그때 만난 동아리 선후배는 서로가 서로에게 버팀목이 됐다. 덕분에 학교에 정을 붙이고 전공과목에도 집중할 수 있었다. 군대를 제대하고 나서는 F학점을 열심히 메우고 과외 아르바이트도 했다. '청문회' 활동도 빠질 수 없었다. 이래저래 정신없이 졸업반이 됐다.

동문은 지금의 나를 만든 과거의 결정적인 순간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청문회' 활동을 했던 그때를 꼽았다.   "그 시절 저를 지탱해 준 것은 멘토 역할을 해준 동아리 동문들과 저를 따르는 후배들이었습니다. 그 동아리 선후배의 우정은 지금도 이어져 오고 있고 기업을 운영하고 사회 활동을 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수많은 동아리가 생겼다가 사라졌어도 청문회는 지금껏 명목을 유지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장애인에게 직업은 삶을 지키는 무기
 
김정현 동문은 대학 졸업 후 삼성생명과 삼성화재 자산운용부문에서 부동산관련 업무를 하며 18년간 직장 생활을 했다. 후회 없이 열심히 일했다. 소위 일류대를 나온 동기들 보다 인정받고 싶었다.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1998년 (주)제일비엠시를 창업했다. 인력을 채용, 계약을 맺은 기업에 이들을 파견하고 관리하는 인적자원 아웃소싱 전문회사다. 이를 모기업으로 현재 제일비에스(주), 제일에스피(주), (주) 제일과동행 등 모두 4개 법인으로 성장했다.


특히 (주)제일과 동행은 국내 16번째의 장애인 표준 사업장으로, 지적 장애인들을 고용,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는 회사다. 장애인에게 처음 관심을 두게 된 계기가 궁금했다. "장애인 협회 쪽에 제 친구가 한 명 있습니다. 장애인 인권을 위해 애쓰는, 그쪽 방면으로는 유명한 교수입니다. 저는 기업인이니까, 주로 밥을 사러 다녔지요. 그러다 임원을 하라는 권유가 있어서 참여하게 됐습니다. 가볍게 생각하다 촉촉이 젖어든 경우죠."

김동문은 장애인 공단과 장애인 표준사업장 MOU를 맺고 (주)제일과 동행을 창업했다. 사업장에는 현재 28명의 지적 장애인이 일하고 있다. 주로 단순 포장이나 전자제품 조립 등의 임가공업을 한다. 지적 장애인이다 보니, 생산성이 낮다. 하지만 법으로 정해진 최저임금을 지급해야 해서 매출을 보존하기가 쉽지 않았다. 장애인공단의 지원을 받고 있지만 사업 초기엔 힘이 들었던 게 사실이다.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동문의 의지는 확고했다.

"장애인도 일을 해야 합니다. 일을 해야 자신의 삶을 책임질 수 있습니다. 단순히 금전적인 도움이나 일시적인 혜택을 주는 것은 장애인들에게 도움이 안 됩니다."
시간이 지나자 서툴기만 하던 그들의 손에 속도가 붙었다. 작업에 숙련이 되어서 조금씩 매출이 오르고 있다. 앞으로는 조금 더 난이도 있는 작업을 통해 장애인들이 기술을 익힐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다. 기술자가 되면 장애인들도 스스로 살아갈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 다양한 일자리를 개발하는 등 여러 가지 구상을 하고 있다.

2010년에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린 지적장애인 세계 축구대회 단장으로 참가하기도 했다. 몸은 성인이지만 지적 연령이 초등학생 수준 정도의 말과 행동을 하는 그들을 보니  애정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25일간의 일정을 내내 함께 했다. 같이 먹고, 자고, 세계 여러 나라 선수들과 시합하는 것을 보면서 그들과 좀 더 가까워진 계기가 됐다.

다시 캠퍼스로 간다면 기타 동아리 활동하고파
 
창업 초기부터 동문은 기업 이념으로 '사람이 제일이다'라는 자신의 평소 생각을 내세웠다. 기업의 이념과 개인의 이상을 일치시키기는 쉽지 않은 일. 어려움을 없었는지 물었다.
"사업을 하다보면 회의가 오는 것도 사실입니다. 특히 갑과 을의 관계에서 오는 인간적인 씁쓸함이 있어요. 간혹 참기 힘든 경우도 있었죠. 하지만 경영이념을 수정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저희 회사는 승진과 연봉을 결정하면서 변하지 않는 원칙이 있습니다. 남녀 구분, 기혼자 ․미혼자 구분, 학력 구분을 하지 말자라는 겁니다. 남자라서, 좋은 대학 나왔으니까, 그런 배려는 없습니다. 저는 누구보다 학교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싶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 회사엔 4년제 대학부터 전문대 졸업자까지 고루 일하고 있습니다. 국민대 후배도 3명이 있습니다. 각자 자신의 분야에서 전문가로서 열심히 일합니다. 능력 중심으로 평가 받는 사회가 사람 중심의 사회를 만드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인터뷰를 마무리 하면서, 조금 엉뚱한 질문을 해봤다. 지금 이 순간, 스물두 살로 돌아간다면 무엇을 하시겠냐고. "노는 걸 배우고 싶습니다. 우리 때는 뭘 해보고 싶어도 아르바이트에 바빴고 강당은 텅 비어있기 일쑤였습니다. 도서관에도 책이 충분치 않았죠. 지금 캠퍼스로 간다면, 사상이나 학술적인 동아리 말고 좀 노는 것을 하고 싶습니다. 지금도 어디 가서 노래나 춤을 시키면 쑥스러워서 제대로 못 나섭니다. 일 하느라 바빴던 우리 세대의 일반적인 모습일 겁니다. 기타 동아리나, 체육 동아리 같은, 암튼 젊음의 낭만을 마음껏 즐기고 싶습니다."


아쉬움이 묻어나는 솔직한 답변이었다. 이어서, 후배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도 덧붙였다.
"지금은 다양한 문화적인 혜택과 인프라가 구축되어 있으니 적극적으로 누리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취직이 전부는 아니잖아요. 물론 취업률이 대학을 평가하는 데 중요한 잣대이기는 합니다만, 그보다 자기 계발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으면 좋겠어요."

사원이 보는, 대표로서의 모습은 어떨까. 영업부에서 일하고 있는 강민석 사원(국민대 행정학과 졸업)에게 물었다.
"대표님은 일에 대해서는 철두철미하시죠. 거의 완벽에 가깝게 일하기 위해 노력하십니다. 결단력, 추진력도 남다르신 분입니다. 동문으로서, 상사로서 배울 점이 많습니다."

40여 분에 걸친 인터뷰를 마치고 동문은 급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인터뷰 때문에 미뤄 둔 외부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서였다. 사람이 제일이다, 상식적인 생각을 실천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 뛰듯이 걸어가는 동문의 뒷모습을 보면서 잠깐 든 생각이었다.